누군가의 말처럼 미치도록 가보고 싶어했던 땅, 노래가사처럼 울릉도 동남쪽으로 씨플라워호를 타고 3시간 가량 뱃길을 가르며 도착한 곳, 독도(獨島). 한반도의 시작이자 찬란한 햇살을 가장 먼저 품는 독도가 우리 땅임을 확인하기 위해 그날도 수많은 애국국민들이 독도를 향하고 있었다. |
독도에 입도하자마자 33인 대표자들은 지금 오르지 않으면 일본에 빼앗기기라도 하듯 태극기를 손에 쥐고 600여M의 가파른 계단을 하나둘 밟으면서 불과 30여분만에 독도정상을 향해 올랐다. 정상 바로 아래 일본땅을 향해 호령하듯 바라보고 있는 ‘한국령(韓國領)’에 시선이 집중되었다. 1953년 4월 33명의 독도수비대원들이 독도를 점령한 일본인들을 몰아내고 동도 암벽에 ‘한국령’이라는 표지를 새겼다. 정말 장한 일이다. 이 자랑스런 ‘한국령’에 서서 일본 땅을 주시하고 있는 33인 대표자들도 주체할 수 없는 비장한 애국심이 끓어오르는 듯 했다. 그것도 잠시...바람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정상이 멀지 않은듯 했다. 30여M 남짓...독도최정상. |
동도와 서도 두섬 사이 수면 아래로는 자갈과 모래가 환하게 들어올 정도로 너무 맑다. 바다와 하늘과 조화를 이룬 독도의 자연 경관은 어느 곳을 카메라에 담아도 한폭의 그림을 방불케 한다. 그러나 그들에게서는 정상을 오른 자의 웅혼미가 흐르기 보다는 수천 년 간직해온 우리 것을 지켜야 한다는 비장미가 느껴졌다. 한동안 말을 잊은채 푸른 바다를 둘러보고 나서야 웅성대기 시작했다. 일본 땅을 향해 큰 목소리로 ‘이 땅이 어떻게 니네 땅이냐’고 외치는가하면 ‘독도는 역시 우리땅이군’하며 점잖게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인천에서 온 분은 섹스폰으로 ‘독도는 우리땅’을 구성지게 연주해 독도정상의 분위기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
최정상에 머물기를 겨우 30여분, 사방을 돌아보기에 연신 바빴지만 사실 독도 정상에서 사방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일본땅이라고 우길만한 근거는 하나도 찾을 수 없었다. 하다못해 꿱꿱거리며 날아다니는 저 수천마리의 갈매기조차 일본땅에서 건너온 갈매기는 한 마리도 없을 것이고 독도 주변에서 많이 잡히는 오징어나 명태조차 일본해류를 타고 이곳으로 흘러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
그런데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이 단 한사람도 없었다. 혹자는 일출봉(日出峯)이 어떠냐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었지만...너무 경외스런 땅이라 감히 이름을 올릴 수 없었다는 얘기인가? 개인적으로는 독도최정상에 있는 봉우리이니 그냥 ‘독도봉(獨島峯)’이라고 부르면 어떨까? 혼자 뇌까려보기도 했다. 독도경비대원들이 생활하는 막사와 헬기장, 독도등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 시도했다가 몇차례나 제지당하고 더는 찍기를 포기했다. |
접안지역에서는 나홍주 전 독도조사학회 회장이 확성기를 통해 "독도문제의 고찰"이란 특강을 통해 독도를 우리 땅으로 지키고 가꾸어 나가야 한다고 외쳤다. 나회장은 “독도는 한,일간 법리상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의 독도에 대한 탐욕의 문제”라고 지적하며 “실효적인 지배와 주권수호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씨플라워호에 다시 몸을 실으면서 많은 국민들이 독도로 가는 길은 애국심의 발로였지만 내려오는 길은 아쉬움의 여정이었다. 독도에 대한 자세한 소개책자도 부족했고 포항이나 묵호에서 울릉도를 거쳐 독도로 가는 뱃삯이 엄청나고 하루 하번 운행되는 배편도 관광객들의 발길을 묶어 여정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다. 이번 행사는 코리아독도녹색운동연합(상임대표 박순종, 공동대표 방길남)이 주최하고 동북아역사재단이 후원, 안용복장군 기념사업회, 광개토대제기념사업회, 한민족흰옷입기운동본부, 대한민국 독도사수대, 대한민국 독도사랑회, 인천장애인 문화인협회 등 수십 여 개의 단체들이 참가했다. (이종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