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위기 막았을까?

  • 등록 2008.10.21 12: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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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산 소고기 파동과 KBS 사태를 간신히 넘긴 이명박 정부가 이번에는 YTN-공정택-쌀직불금 3중 악재로 또다시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정권 초기에 이렇게 다양한 악재를 만난 대통령이 지금까지도 없었지만 앞으로 과연 존재할 지 의문입니다. 왜 유독 이명박에게 악재가 쏟아지는 것일까요?

크게 보면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유유상종 법칙에 따라 사람이 모여들다 보니 크게 사고 칠 사람들이 정부 요직에 많이 들어오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린쥐" 돌풍(?)을 일으킨 이경숙 인수위원장, 소고기 파동의 주역 정운천 전 농림부 장관, 땅을 사랑한 박은경 전 환경부 장관, "오빠~" 파동의 박미석 전 사회복지수석, 균형감각 빵점 최시중 방통위원장, 출근도 못하면서 사람을 짜른 구본홍 YTN 사장, 앞 뒤 가리지 않고 돈 받아챙긴 공정택 서울시 교육감, 쌀직불금 파동에도 불구 끝까지 버티는 이봉화 보건복지부 차관 등이 모두 대형사고를 터뜨렸고, 그 덕택(?)에 이명박 지지율은 10~20%대가 고착화되어 버렸습니다.

둘째, 대통령에게 철학과 원칙이 없다보니 작은 실수나 돌발상황이 계속해서 에스컬레이션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박정희 정권 하에서도 2차례에 걸쳐 세계적인 오일쇼크가 있었고, 전두환 정권 하에서도 아웅산 테러사건, 소련 KAL기 격추사건 등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김영삼 정권 하에서도 김일성 사망과 북핵위기가 있었습니다. 이처럼 모든 정권이 위기를 겪을 수 밖에 없었음에도 유독 이명박 정부 하에서 사고가 많은 것처럼 비춰지는 것은 큰 사고는 큰 사고대로 여론을 출렁이게 하고, 어지간한 작은 사고 또한 대형사고로 발전하여 또 한번 여론을 출렁이게 하기 때문입니다.

셋째, 이처럼 최고 통치권자의 소신과 원칙이 없다보니 이너서클 밖에 있는 사람들은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맹목적인 충성심을 발휘하고, 이너서클 안에 있는 사람들은 도무지 대통령에 대한 배려와 애정은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모든 책임과 부담을 이명박 대통령에게 전가한 가운데 버티기에만 여념이 없습니다. 다시 말해 정작 충성심과 책임감을 가져야 할 사람들은 긴장감 없이 풀어져있고, 한 발짝 물러난 상태에서 견제와 직언을 해야 할 사람들은 도리어 맹목적인 충성심 속에서 계속해서 사태를 그르치고 있습니다. 이명박을 지키기 위해 진즉 사퇴했어야 할 강만수와 구본홍은 버티고 있고, 권력에서 한 발짝 떨어져 대통령을 올바로 이끌어야 할 임채진 검찰총장과 어청수 경찰총장은 보라는 듯 충성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대통령에게 분명한 소신과 원칙이 있으면 이에 부응하도록 행정을 이끌어가면 되지만 그것이 없다보니 계속해서 눈치를 보면서 충성경쟁을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충성경쟁을 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은 그저 철밥통 지키기에만 여념이 없지요.

사실 제가 이명박 정부에 대해 주목하고 있는 부분은 "대형사고"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해결하고 돌파해나가는 방식입니다.

대통령이 신속하고도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사적인 이익을 철저히 배제한 가운데 전적으로 국리민복에 부응하겠다는 확고한 소신과 원칙을 가져야만 합니다. 그리고 국정 전반에 있어서 이와같은 대통령의 흔들림없는 입장이 관료들 머리와 가슴 속에 자리잡을 때에 비로소 정부가 합리적이고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와 같은 최고권력자의 소신과 원칙이 없다보니 관료들이 제멋대로 판단하고 움직일 수밖에 없고, 그러다보니 당-정-청 할 것없이 계속해서 엇박자가 나오고 대형사고가 줄줄이 터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대통령선거에서 500만표 이상의 압도적 차이로 승리했고, 총선에서도 압도적 과반수를 얻어 그야말로 막강한 "무적함대"로 다시 태어난 여당과 청와대가 왜 80개 남짓의 의석 밖에 차지하지 못하고 있는 민주당과 권좌를 빼앗긴 대통령에게 이토록 번번이 수모를 당해야 하는 것일까요? 한 마디로 힘을 키우는 방법도 모르고, 힘을 제대로 사용하는 방법조차 모르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명박 정부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은 정치학의 가장 단순한 원리조차 망각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념과 명분을 선점해야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이명박 정부가 사면초가 신세에 놓인 것은 스스로가 파놓은 "실용"의 함정 때문입니다. 만일 대다수 국민들이 보기에 이명박 정부의 이념과 명분이 분명했더라면 다소의 난맥상이 있더라도 아마 기다려주고 묵인해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애시당초 그런 것을 제시하지 않고 무작정 "실용"을 내세우다 보니 국민들에게 좀 더 참아달라고 이야기할 명분 자체를 소멸시켜버렸습니다. 실용이 최고의 가치로 부각된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먹고사는 문제"인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치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바로 그 "먹고사는 문제"에서 잇따라 헤메는 모습을 보이니까 민심이 떠나가는 거지요.

이 점을 염두에 두면 박근혜 대통령 하에서의 국정운영에 대해 어느 정도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첫째, 최고 통치권자의 소신과 원칙이 분명하기 때문에 이를 적극 반영하여 행정을 이끌어가면 되기 때문에 불필요한 충성경쟁이 벌어질 필요가 없어지고, 결과적으로 그만큼 사고의 가능성은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 대통령이 사적인 이익을 배제한 가운데 국리민복 원칙에 따라 국정을 이끌어간다는 믿음이 있기에 다소 시련과 난맥상이 있더라도 국민이 기다려주고 믿어줄 것입니다. 셋째, 유유상종 법칙에 따라 비슷한 사람들이 정권에 참여하기에 어떠한 경우에도 대통령에게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스스로 운신하고 결단함으로써 여론이 악화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할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사실상 존폐 위기에 놓인 80여석의 민주당에게 끌려다니는 것과 정반대로 박근혜는 120여석으로 안정적 과반수를 획득한 열린우리당을 2년 반 동안 그야말로 보기 좋게 요리했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요? 한마디로 분명한 원칙과 소신을 고집하면서도 결단할 때에는 단호하게 대처함으로써 상대방에게 빌미를 일절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자 성추행에 휘말린 사무총장을 즉각 경질하고 윤리위에 회부한 것, 지방선거를 앞두고 중진 의원들의 공천댓가 수뢰가 표면화되었을 때에 즉각 이들을 제명한 것 등이 그 대표적 사례입니다.

여당도 아닌 야당이 이렇게 철저하고도 흔들림없이 정치를 하는 데 거대여당인들 어떻게 당해낼 수 있겠습니까? 바로 이것이 정당지지율 50%와 재보선 및 지방선거 전승 신화로 이어진 것입니다. 오죽하면 "정치 9단" 노무현이 사실상의 항복선언이라고 할 수 있는 "대연정"을 들고 나왔겠습니까?

우리는 곰곰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박근혜 대표 시절에도 이재오, 이방호, 홍준표, 박형준 등이 당 지도부의 요직을 모두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이재오는 원내대표, 이방호는 정책위의장, 홍준표는 혁신위원장, 그리고 박형준은 혁신위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이들이 크게 사고를 치지 않은 것은 박근혜의 확고한 원칙 때문에 끊임없는 긴장감 속에서 소신있게 일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대표 하에서 멀쩡했던 사람들이 이명박 대통령 하에서 갑자기 상태가 나빠진 것이 아니라 본래 사고 칠 개연성이 많았던 인물이 박근혜 대표 하에서는 긴장감을 갖고 일했다는 것입니다.

이재오와 이방호의 몰락도 그런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아는 만큼만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이들 사고방식으로 볼 때에 경선에서 패배하고도 끝까지 승복하여 당에 남아있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경선 승리 이후 계속해서 박근혜를 압박하면 친박세력이 탈당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았고, 그렇게 되면 자신들이 한나라당 지분을 100% 장악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들이 보기에는 100% 죽을 수밖에 없는 길을 계속해서 박근혜가 고집을 하니 전략이 전무할 수밖에 없고, 그러다보니 말 그대로 속수무책인 것입니다.

노무현이 박근혜에게 두 손 두 발 다 들 수밖에 없었던 것도 이와 유사한 측면이 있습니다. 당시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은 국가보안법 폐지와 사학법 개정 중 최소한 하나는 박근혜가 양보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판단했고, 보수세력의 정책 우선순위에 있어서 국가보안법이 앞선다고 보았기에 국가보안법 문제를 대폭 양보하는 대신 사학법을 입맛대로 요리할 수 있다고 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박근혜가 두 가지 중 단 하나도 양보할 수 없다고 버티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국정운영 경험과 행정경험이 부족한 박근혜이기에 "대연정" 카드를 내밀면 이를 수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보았는데 그 예상도 보기좋게 빗나가 버렸습니다. 이것이 박근혜의 원칙이 갖는 힘입니다.

이명박 지지자들 상당수는 현재의 상황이 상황인 만큼 박근혜가 대통령이었다고 할지라도 별반 달라질 것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도대체 왜 우리는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뽑는 것입니까? 누가 최고 통치권자가 되고, 국회 권력구도가 어떻게 바뀌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기에 애써 4년 혹은 5년마다 바쁜 스케쥴을 뒤로 한 채로 투표장에 가는 것 아닐까요? 그런 사람들에게 한번 묻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지난 10년간 김대중과 노무현이 아닌 보수세력이 집권했더라도 지금과 별반 달라질 것이 없다는 말인가요? 그렇다면 당신들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우파입니까? 아니면 좌파입니까? 진짜 보수 지지자라면 정치적 무관심과 회의론을 부추기지 않지요.

최근 중도성향 혹은 이명박 지지에서 박근혜 지지로 돌아서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합니다. 지극히 당연한 현상입니다. 왜냐하면 박근혜는 경선에서만 억울하게 패배했을 뿐 노무현을 요리하는 솜씨는 물론, 이명박과 이재오를 요리하는 솜씨가 정말 경이로움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과연 현존하는 정치인 중 두 명의 전현직 대통령을 이토록 철저하게 자기 페이스에 말리도록 하는 사람이 박근혜 이외에 또 있을까요? 두 명의 전현직 대통령이 "살아있는 권력"으로 군림하고 있을 때에도 이토록 능수능란하게 요리하는데 앞으로 계속해서 지지기반이 붕괴되고 레임덕으로 빠져드는 상황에서 승부를 예측하는 것이 뭐 그리 어렵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동물적 생존본능이 발동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과연 지금의 위기를 막아냈을까요?
그 대답은 저도 알고, 여러분도 알고, 박근혜도 알고 있습니다. 이명박과 그 지지자들만 모르지요. (관찰자)
뉴스 편집국 기자 soc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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