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당시 내전으로 국민들이 기아에 시달리던 수단에서 찍은 이 사진은 굶주림을 이기지 못해 쓰러진 어린 소녀와 이 소녀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독수리를 한장의 사진에 담아 아프리카 수단의 참상을 세계에 알린, 정말 백마디 말보다 강한 한 장의 사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진은 유명해졌지만 죽어가는 소녀를 구하지 않고 사진을 찍기 위해 가장 좋은 순간을 기다렸다는 이유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캐빈 카터는 사람들의 거센 비난을 받게 됩니다. 내전으로 고통받는 아프리카 수단의 현실을 전 세계에 알려 더 많은 생명을 구한 것일지도 모르는 그의 행동도, 자신의 눈 앞에서 기력이 다해가는 사그라져가는 소녀를 구하지 않은 비인도적인 태도로 인해 비난받게 된 것입니다. (이 사진을 찍은 후 캐빈 카터가 소녀를 안고 구호 센터로 향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사실은 소녀 스스로 일어나 구호 센터로 가던 길을 갔다고 합니다.)이런 비난과 자신의 눈으로 목격한 끔찍한 전쟁의 참상이 남긴 상처를 견디지 못한 캐빈 카터는 퓰리처 상을 수상한 3개월 뒤 자신의 트럭안에서 배기가스를 마시고 자살하고 맙니다. 그의 이야기는 다큐멘터리로도 제작돼(The Death of Kevin Carter: Casualty of the Bang Bang Club) 아카데미상 후보에도 오르게 됩니다. 결국 그가 찍은 사진은 전 세계에 아프리카 오지의 수단에 대한 관심을 불러와 목적은 달성했지만 그 목적이 수단까지 정당화 시키진 못한 셈입니다. 광우병 위험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들을 정부보다 앞장서서 "괴담"이라 칭하고 나선 조선일보의 말바꾸기가 국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지만 조선일보는 "자신들은 말바꾸기를 하지 않았다"며 예나 지금이나 꾸준히 광우병에 대해 과학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해 왔을 뿐이라고 항변합니다. 하지만 이 기사를 본 문정동에 사는 한 대학생은 스스로 직접 상점들을 방문해서 조사한 결과 ‘촛불시위와 매장의 매출액감소의 연관성에 대해 12곳에서 “연관성이 전혀 없다”고 답했고 2곳은 조사거절, 1곳은 “약간의 연관성이 있을 수도 있다”고 답했다"는 결과를 발표해서 동아일보의 기사를 무색하게 만듭니다. 이 조사 결과가 다른 언론에 보도돼 알려지자 처음 기사를 썼던 동아일보 기자는 원래 기사에는 쓰지 않았던 "전적으로 촛불 시위 때문에만 어렵다고는 말 못하지만"이란 말을 반박 기사에 슬며시 끼워 넣고는 자신은 "기자회견 참석자들의 발언을 충실히 전달"했다고 항변하며 오히려 그런 사실을 지적하는 다른 언론사를 비난합니다. 조선과 동아일보가 이렇게 앞서 나가자 조중동 트리오의 또 다른 맴버인 중앙일보 역시 뒤떨어 지지 않겠다는 각오로, 길거리에선 연일 촛불집회가 계속되지만 다른 국민들은 미국산 쇠고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직접 미국산 수입 쇠고기를 파는 식당을 찾아 기사를 올립니다. 하지만 이 기사에 등장하는 미국산 쇠고기를 즐기는 사진속 식당 손님들이 중앙일보의 경제부 기자와 대학생 인턴 기자인 것이 밝혀지자 발빠르게 이 기사를 삭제하고 사과문이란 것을 싣습니다. 아무래도 중앙일보는 철면피함이나 적반하장으로 뻔뻔함에서는 조선,동아일보에 비해서는 한 수 뒤쳐지는 하수인 것 같습니다. 사실 누구도 모든 신문이 똑같은 시각으로 실험보고서를 쓰듯 기계적 객관성에 기초해 기사를 써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문사 개개의 구별되는 논조가 있고 그에 따른 다른 시각의 기사가 존재할 수 있음을 인정합니다. 그것이 보수적일 수도, 진보적일 수도 있고 정부를 옹호할 수도, 정부와 대립각을 세울 수도 있기 때문에 결국 각 신문사의 논조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자기 성향에 따라 자발적으로 각 신문의 독자가 되는 것이겠죠. 하지만 거기에는 움직일 수 없는 "진실"이 밑받침 되어야 하고 진실에 근거한 자기 논지만이 사람들이 신문을 신뢰할 수 있게 하는 기본 전제 조건이 됩니다. 그렇지만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몇년동안 꾸준히 견지해 오던 주장을 하루 아침에 뒤집고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며 정반대의 말을 한다거나 처음엔 쓰지 않았던 말을 슬며시 새 기사에 끼워 넣고는 자신들은 "참석자들의 발언을 충실히 전하는 보도"를 했다고 우기고, 기자를 손님으로 가장해 기사를 작성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한국의 대표 언론(?)들의 모습들을 공정한 언론사의 논조라고 하기에는 너무 천박할 뿐만 아니라 신문 기사가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사실(Fact)에 기반을 둔 진실성마저 부족해 보입니다. 더구나 일선에서 발로 뛰는지 머리속에서 상상으로 뛰는지(?) 모를 기자들의 이런 고의적인 왜곡은 과연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기자의 양심"이라는 것이 있는지 의문이 들게 합니다. 그들은 이런 비난에 자신은 쉰내나는 비빔밥속에 남은 싱싱한 나물이라고 주장하고 싶을지 몰라도 안타깝게도 쉬어버린 비빕밥에서 상한 밥과 싱싱한 나물을 골라 먹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독자들에겐 그냥 쉰 밥에 쉰 나물일 뿐입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숭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찍은 사진에 쏟아진, 수단이 정당하지 않았다는 비난을 괴로와 하던 캐빈 카터를 한국의 조중동 기자들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지 정말 궁금합니다. 김현태kht1007@naver.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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