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지도자’는 끝내 오지 않는가?

  • 등록 2012.02.07 07: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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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륜보다 인기에 집착하는 우리 국민들

 
김정일의 죽음은 우리에게 다시 한 번 통일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물론, 우리에게는 북한과 대화를 열고 남북관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당면과제가 있지만, 그러는 중에도 늘 잊지 않아야 하는 것이 통일이라는 수퍼골(super goal)입니다. 우리는 분단국 국민입니다. 숱한 실향민들과 탈북자들이 숨쉬고 있는 곳이 대한민국입니다. 이런 우리가 통일을 잊을 수는 없겠지요. 북한의 변화를 기대하면서 통일이 언제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더라도 기회를 거머잡을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숙명인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독일통일의 경우를 비교해보는 것은 매우 유의미한 일입니다.

우선 독일통일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6대 요인들을 정리해보겠습니다.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자 많은 동독인들이 서독으로 탈출했고 11개월 후인 1990년 10월 독일은 통일되었습니다. 동독주민이 서독을 택했기 때문에 통일이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 동독 내부의 변화역량과 통일역량이 독일통일을 가능하게 한 첫 번째 요인입니다.

두 번째 요인은 동독 국민으로 하여금 서독을 선택하게 만든 서독의 동방정책입니다. 서독은 이 정책을 통해 동독정부와의 화해협력을 시도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동독을 개방시키고 외부세계를 알리는데 주력했습니다. 지원을 제공하면서도 “동독이 요구하기 전에는 주지 않는다,” “대가가 없으면 주지 않는다,”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주지 않는다” 등의 원칙들을 고수했습니다.

세 번째 요인은 서독의 압도적인 국력과 확고한 안보태세였습니다. 만약 동독정부가 이탈자들을 무력으로 제지하는 등 저항했더라면 독일통일은 이루어지지 못했거나 지연되었을 것입니다만, 동독정부는 서독의 압도적인 힘과 확고한 안보태세에 눌려 저항을 포기한 것입니다.

네 번째 요인은 서독의 통일외교와 미국의 중재였습니다. 독일은 1,2차 세계대전을 도발한 국가로서 주변국들은 독일의 재통일을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만, 이들을 설득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미국이었습니다. 행운도 따랐습니다. 당시 동독에는 수십만 명의 소련군이 주둔하고 있었지만, 소련은 미국과의 핵무기 경쟁으로 경제가 파탄 나고 연방해체를 눈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에게도 독일통일은 소련을 압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다섯 번째 요인은 서독 국민의 통일의지였습니다. 베를린 장벽 붕괴 후 무려 60만 명이 서독으로 탈출했지만 서독은 이들을 수용했고, 국민은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서독국민은 통일이 엄청난 사회적 문제와 막대한 비용을 수반함을 알면서도 통일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무언의 합의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게르만의 저력이었습니다. 여섯 번째의 요인은 헬무트 콜(Helmut Kohl)이라는 통일지도자의 존재였습니다. 1982년 총리로 취임한 그는 통일에 대해 강한 신념과 깊은 전략을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동독의 호네커 국가평의회의장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관용적인 정책을 취했지만 동독을 변화시키는데 있어서는 냉철한 전략들을 추진했습니다. 독일은 통일되었고, 콜 총리는 통일독일의 첫 총리라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콜 총리는 통일에 대한 생각을 잘 드러내지 않는 포커페이스로 유명했지만, 수행원들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늘 “나는 통일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느님이시여 조국 독일을 축복하소서(Ich denke wir schaften die Einheit. Gott segne unser deutsches Vaterland)”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독일은 콜이라는 통일지도자를 가졌고 여야 정치지도자들은 통일전략을 따라주었습니다. 독일은 통일이라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 요인들을 한국에 적용해보면, 우리가 너무나 준비가 덜 되어 있는 국민이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첫째, 북한 내부의 통일역량은 당시 동독에 비해 크게 미흡합니다. 북한에 휴대폰 소지자가 늘고 있고 한국의 드라마와 노래가 인기라고 하지만, 동독 국민이 안방에 앉아서 서독 TV를 보고 왕래까지 했던 사실에 비교하면 조족지혈(鳥足之血)입니다. 둘째, 서독이 일관성이 있는 동방정책을 펼친데 비해 한국의 대북정책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갈지(之)자를 걸어왔으며, 오히려 북한이 적전분열(敵前分裂)의 경지에 이른 남한의 보혁갈등을 즐기고 있습니다.

셋째, 한국은 압도적인 안보태세를 구가하고 있지 않습니다. 남한의 경제력이 북한의 40배에 달하지만, 북한이 오히려 핵무기 등 비대칭 능력을 앞세우고 천안함과 연평도를 공격하는 등 남한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넷째, 통일외교도 매우 열악합니다. 엇비슷한 나라에 둘러싸였던 서독과 달리 한반도를 둘러싼 4국은 세계 최강국들입니다. 또한, 중국이 통일의 최대 장애물이 될 수 있고 중국의 방해를 억제해줄 능력을 가진 나라는 미국뿐이지만, ‘정책적 반미’를 넘는 ‘이념적 반미’세력이 만만치 않은 한국을 위해 미국이 희생해줄 용의를 가지고 있는지는 심히 의문스럽습니다.

다섯째, 한국에는 통일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부재합니다. 통일의 당위성과 관련해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돈이 많이 드는 통일은 필요 없다”는 반응을 보이며, 정치적으로 민감하다는 이유로 통일의 구체적인 방법과 내용은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에는 통일지도자가 보이지 않습니다. 한국의 정치문화에서 콜 총리와 같은 통일지도자가 출현하기는 ‘하늘에 별 따기’라고 해야 옳을 것입니다. 이 시대의 대통령은 경제, 복지, 문화, 사회 등 제 분야에서 충분한 경륜을 쌓은 사람이어야 하고, 안보와 통일에서는 깊이와 넓이를 겸비한 지도자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경륜과 고뇌를 쌓아온 사람을 찾기보다는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인기인에 집착하는 한국 국민의 감성적 성향을 감안할 때, 우리를 통일로 이끌 지도자를 찾아 세운다는 것 자체가 나무에서 물고기가 열리기를 기대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인지도 모릅니다.
김태우 통일연구원 원장
미디어 뉴스 기자 soc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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