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민간기억의 외교사, 시민이 써온 한·일관계 30년

  • 등록 2025.08.04 19: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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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동원에서 위안부까지…외교의 빈칸을 메워온 시민사회의 기록



[ 김덕엽 칼럼니스트 ]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은 올해 정치와 외교가 흔들릴 때마다 우리는 묻는다. 한·일관계의 지속성을 지탱해온 힘은 무엇인가. 그 답은 정부가 아니라 시민의 기억이었다.


1990년대 초 고(故) 김학순 할머니의 공개 증언은 단순한 고백이 아니었다. 국가 외교가 외면한 진실을 국제사회에 올려놓은 역사적 선언이었다. 그 순간부터 한국과 일본의 시민사회는 한·일 외교의 또 다른 주체가 되었다.

위안부 피해자 증언 운동을 시작으로 강제동원 진상조사와 소송 지원, 국제사회(UN, ILO, ICC 등) 대상 인권 외교 활동 이 모든 것은 외교의 공백을 메운 기억의 연대이자, 시민의 외교였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면 사과는 번복되었고, 외교 합의는 국민 신뢰를 잃었다. 그러나 시민은 멈추지 않았다. 일본 시민사회와 연대해 지속적인 기억 운동을 벌였고,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 한일 청소년 교류, 양국 공동보고서 작성 등 구체적 실천을 통해 “기억의 외교”를 제도화해왔다.

2023년부터 이어진 장생탄광 유해 조사 및 추모 활동은 새로운 운동이 아니다. 1990년대 이후 위안부·강제동원 운동의 연장선이다. 유족들과 일본 시민단체가 함께 기록을 복원하고, 양국 잠수사들이 함께 유해를 조사한 그 일련의 과정은 국가 외교가 멈춘 자리를 시민이 채운 외교의 새로운 전범(典範)이었다.

한 세대가 사라진 뒤, 기억은 증언이 아니라 기록과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 지금 우리는 포스트기억(post-memory) 시대에 진입했다. 그리고 이 시대의 외교는 다음 질문 앞에 선다. 우리는 기억을 어떻게 전승할 것인지, 외교는 책임을 어떻게 제도화할 것인지, 시민은 언제까지 임시 대체물이 되어야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한일 시민사회가 구축해온 '민간기억의 외교사'는 일회성 감정표출이 아닌 30년간 쌓아온 관계의 기록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이 기억의 외교를 공식 외교의 틀 안으로 포함시키는 일, 즉 다층적 외교의 구조를 설계하는 것이다.

기억을 기록하고, 책임을 나누며, 존엄을 지키는 외교 그것이 바로 한·일관계의 진정한 미래다.

김덕엽 기자 editorkim12350@outl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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