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덕엽 칼럼니스트 ] 한국과 일본은 올해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았지만, 이른 축하의 말은 조심스러웠다. 대통령 탄핵으로 인한 한국 외교의 공백, 그리고 일본 내각의 잇단 교체와 보수화 흐름은 양국 외교에 깊은 불확실성을 더했다.
이러한 시기, 정부가 멈춘 자리에서 누가 외교의 연속성을 지탱했는가. 그 답 중 하나는 ‘국회’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한일의원연맹이 있었다.
1975년 창설된 한일의원연맹은 반세기 동안 양국 국회의원 간 신뢰의 가교 역할을 해왔다. 당파를 초월한 초국가적 연대, 정례적인 교류, 그리고 위기 시기마다 반복된 물밑 대화는 이 연맹이 보여준 독자적인 외교의 자산이다.
이 연맹은 실무 차원의 외교가 멈췄을 때, 정치적 감각과 인간적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제2의 외교 채널’로 기능했다. 예를 들어, 2024년 한일 교과서 갈등이 고조되었을 당시에도, 양국 의원 간 비공식 서신 교환과 대화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외교의 흐름을 유지하게 했다.
강경한 대립보다는 대화의 여지를 남기는 정무적 균형이 필요한 상황에서, 의회 외교는 감정을 다독이고 해석의 균형을 조율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실제 의회 외교에서의 한계도 분명하다. 정권 교체에 따라 구성원과 노선이 바뀌고, 국민 정서와 괴리될 경우 ‘정치인들끼리의 타협’이라는 냉소를 불러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회 외교는 외교의 ‘연속성’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가능성을 품고 있다.
왜냐하면 외교는 결국 신뢰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제도가 바뀌어도, 감정이 흔들려도, 상대국 국회의원과의 인간적 관계는 남는다. 이는 외교를 구성하는 데 있어 정부와 함께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정치의 얼굴’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부-의회-시민사회로 이어지는 삼각형 외교 구조다. 어느 한 축만으로는 외교를 완성할 수 없다. 정부는 전략을 설계하고, 의회는 관계를 유지하며, 시민은 정당성을 부여한다. 이 셋이 동시에 작동할 때, 외교는 지속 가능하고 정당한 외교로 완성된다.
60년 외교의 궤적을 다시 살펴보며, 우리는 이제 묻는다. “정부 외교가 실패할 때, 누가 외교를 지탱할 것인가” 그때를 대비한 준비가 곧 외교의 성숙이자 신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