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제 의원, 동트는광장 (40) - 재벌의 진화

  • 등록 2011.08.04 17:3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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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인제 의원 
ⓒ 더타임즈
아침 신문에 삼성이 MRO(소모성자재구매대행)사업에서 손떼기로 했다는 뉴스가 실려 있다. 아, 우리 재벌들이 진화하고 있구나! 이런 생각이 한줄기 시원한 바람처럼 나의 머리를 맑게 해주는 아침이다.

지금의 추세대로라면, 내년 총선과 대선은 필시 복지 포퓰리즘 경연장이 될 것이다. 각 정당과 후보들은 경쟁적으로 대형 복지 프로그램을 들고 나올 것이 틀림없다. 이미 보편적 복지냐, 맞춤형 복지냐의 경쟁구도까지 잡혀있는 상황이다.

복지 경쟁은 필연적으로 어떻게 재원을 조달할 것인가의 문제를 제기한다. 재원조달의 주요 타깃은 부자가 될 수밖에 없다. 부자에게 얼마나 더 많은 세금을 어떻게 부과할 것인가를 놓고 논쟁이 벌어질 것이다. 우리사회에서 부자의 상징은 곧 재벌이다. 재벌은 내년 총선, 대선에서 여야를 불문하고 총공격의 화살을 피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재벌은 어떤 존재인가. 오늘 우리 국민이 겪고 있는 실업의 고통과 빈부격차의 충격이 모두 재벌 탓인가. 따뜻하고 풍요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정부는 재벌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재벌은 해체하거나 개혁해야 할 대상인가, 아니면 스스로 진화하도록 변화를 유도해야 할 경제주체인가.

한국의 재벌은 압축적인 경제성장과정에서 생겨난, 다른 나라에서 찾아볼 수 없는, 고유한 종(種)이다. 선진국들이 한국의 재벌을 자신들의 단어 ‘conglomerate"로 부르지 않고, 우리 말인 ’chaebol"로 표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재벌을 선진국의 대기업집단과 구분하는 특징은 무엇인가. 하나는 정부의 특혜 속에 성장했다는 태생적 한계이고, 다른 하나는 가족 중심의 지배구조라는 전근대성이다. 이것이 재벌의 어제이자 오늘이며, 재벌은 이 사실을 겸허하게 인정해야 한다.

우리가 산을 오를 때 모든 길을 동시에 오를 수 없다. 어느 길 하나를 선택해 올라야 한다. 마찬가지로 60년대부터 시작된 경제개발시대에 우리 정부는 특정산업, 특정기업에 자원을 집중시키는 전략을 채택하였고, 그 과정에서 성장한 것이 바로 재벌이라는 경제유기체이다. 산업화를 추진한 역대정권의 공(功)과 과(過), 압축성장의 명(明)과 암(暗)은 따라서 재벌의 그것과 일치한다고 말할 수 있다.

정부주도의 개발경제시대가 막을 내린 오늘, 우리 국민은 재벌에 대해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표출하고 있다. 무한 경쟁에서 승리하여 국민경제를 지탱해주기를 기대하고, 반면에 강한 힘을 남용하여 상대적으로 약한 중소기업이나 소비자를 억압하고 부당한 이익을 추구하는 탐욕을 부리지 않을까 경계한다. 재벌이 국민의 이 절실한 마음을 헤아려 스스로 변화한다면 최선이다. 정부는 우선 재벌이 자율적인 변화를 추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여의치 않다면 재벌과 정부, 정당과 국민 사이에 긴장이 폭발하게 되고, 사태가 어떤 방향으로 진전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게 될 것이다.

요즘은 조금 수그러들었지만, 한 때 재벌해체 주장이 뜨거웠다. 또 최근까지 재벌일가의 부의 세습, 상속 과정의 탈법, 전근대적인 족벌경영의 폐해가 재벌개혁의 단골 메뉴였다. 지금은 재벌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와 이로 인한 빈부격차의 심화, 경제력의 과도한 집중, 중소기업영역 침범과 재벌 일가의 탐욕이 새로운 개혁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10대 그룹의 작년 매출이 874조원으로 우리나라 GDP의 84%를 차지하고 있다니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가늠하기 어렵다.

정부는 기업 특히 재벌등 대기업집단에 대한 정책을 새롭게 가다듬어야 한다. 재벌의 장점은 살리되 그림자를 지우는데 있어서 과감하게 행동해야 한다. 현재 쥐고 있는 공정거래나 금융감독의 칼을 절도 있게 행사하고 절대 멈칫거려서는 안 된다. 탈세나 경영권 남용 등 기업범죄에 대하여도 약자에 관대하고 강자에 강한 법치주의 원칙이 철저하게 관철되어야 한다.

재벌들의 독과점을 막고, 상대적으로 약한 중소협력업체를 보호하기 위한 정책수단을 새로이 마련해야 할 것이다. 특히 중소기업의 영역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번 삼성이 보여준 스스로의 변화일 것이다. 재벌 스스로 국민의 요구, 시대의 요청을 읽고 변화를 통해 이를 실천해야 한다. 강자의 횡포, 승자의 독식이 자유시장경제의 본래 모습인가. 아니다. 도덕적 의무, 윤리적 긴장이 지배하며 강자가 더 많이 양보하고 베풀 때, 자유시장경제는 생명력이 넘치는 공간으로 발전할 것이다.

나는 우리 재벌들이 더 강한 경쟁력으로 무장하기를 바란다. 전자, 자동차, 조선, 발전설비 등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키운 재벌의 공은 아무리 칭찬해도 모자라다. 또 새로운 산업에서 새로운 강자가 출현하기를 바란다. 재벌들의 몸집을 억지로 줄여 부의 편중을 해소하는 것은 정책이 아니다. 중소기업을 육성하여 재벌의 비중을 줄여나가면 된다.

6,500만 년 전 지구상에서 공룡이 홀연히 사라졌다. 공룡시대가 끝난 것이다. 진화론의 창시자 찰스 다윈은 이런 말을 하였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종(種)은 덩치가 크거나 힘이 센 종이 아니라 변화에 유연하게 적응하는 종이다.’ 재벌이 시대환경의 변화에서 살아남으려면 그 변화에 유연하게 적응하는 길 뿐이다. 오늘 우리 경제 생태계에서 재벌을 공룡에 비유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우리는 공룡의 멸종을 원하지 않는다. 생태계를 더 풍요롭게 하면서 사랑받는 종으로 계속 진화하기를 바랄 뿐이다.

또 태풍이 올라오는 모양이다. 태풍은 자연의 질서를 바꾼다. 내년 총선과 대선은 바로 정치의 질서를 바꿀 태풍이다. 국민들 마음속에 침묵하던 욕구가 강렬한 에너지로 발산되면서 태풍의 진로가 어디를 향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지금부터 재벌들이 스스로 변화하는 노력을 행동으로 보여주지 않는 한 내년 태풍에서 더 큰 시련에 봉착할 것은 틀림이 없다.

진화(evolution)와 혁명(revolution)은 알파벳 하나의 차이지만, 그 결과는 하늘과 땅만큼 판이하다. 진화를 택할 것인가, 혁명적 상황을 자초할 것인가, 이 시대가 우리사회 재벌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소찬호 기자 기자 soc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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