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5명의 유족회원 대표들은 징병, 군속, 정신대 등에서 일제가 자행한 만행에 대한 생생한 당시의 실태를 증언해 학생들은 큰 충격을 경험했다. 양순임 회장은 “이렇게 온 세계가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태평양전쟁 희생자 문제에 대해 일본은 반세기가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대일청구권 보상은 이미 다 끝났다고 강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양 회장은 “같은 전쟁 당사국인 독일은 이미 오래전에 정부를 상대로 한 보상은 물론 지난 90년 이후부터는 전쟁피해자 개개인에 대한 보상도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일본은 이 문제를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위안부를 비롯 강제징용, 징병에 대한 피해 보상에 나서라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는 지난 1973년 4월에 일본이 일으킨 침략전쟁인 태평양전쟁을 전후해 군인, 군속, 노무자, 여자근로정신대, 일본군 위안부 등으로 끌려간 한국인 피해자와 그 유가족들이 모여서 만든 피해자 단체다. 올해로 출범한지 만 39년을 넘겨 태평양전쟁관련 단체로서는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지만 일반 국민들에게는 여전히 `태평양전쟁 희생자"라는 말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
유족회를 이끌고 있는 양순임 회장은 지난 73년 부산에서 유종회가 발족될 당시 20대 후반으로 40여년간 이 일에 전념해 와 이등박문을 사살한 안중근 의사의 반열에는 오르지 못하겠지만 청춘을 고스란히 다바쳐 대일투쟁을 해온 ‘열사’이자 ‘투사’인 셈이다. 그간 유족회 상임감사와 부회장 등을 거쳐 회장으로 일하는 동안 수많은 전임회장 등을 모셨고 태평양전쟁 과정에서 위안부와 징용, 징병으로 끌려가 고생한 수많은 피해자들과 유족들과 혼연일체가 되어 일본정부를 상대로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강연회나 심포지엄은 물론 국회 공청회에도 참가해 대일보상 청구의 당위성을 주장해 왔다. 그런데 양 회장은 지난해 정말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빠졌다. 지난해 4월 당시 ‘태평양유족회 양순임 회장이 유족회원 3만여명으로부터 받은 수 십 억원의 회비를 편취했다’며 ‘경찰에 구속됐다’는 기사가 주요언론에서 일제히 보도됐다. 유족회 전 간부를 지냈던 김모씨가 서울광역수사대에 양 회장을 ‘태평양전쟁 희생자에 대한 보상금을 받아준다며 변호사 선임 명목 등으로 거액을 받아 챙겼다’며 사기혐의자로 몰아 고발한 것이다. 당시 유족회 내부 일부 인사들 중에서는 “한일과거사 문제는 (1965년 당시) 조약을 맺어서 끝났기 때문에 개인적인 소송은 일본에서 일체 승소할 수 없다. 따라서 근원적으로 사기라고 볼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을 한 사람도 있었다. 실제로 당시 양 회장은 가해자인 일본과 태평양전쟁희생자에 개인보상을 촉구하기 위해 국제변호사로 국제적 문제에 대한 재판활동에 경험이 많았던 마이클 최를 선임했고 그들은 방한하여 전국을 순회하며 수임계약을 해야 하는 이유부터 일본에서 보상을 받기 위한 계획에 대해서 설명회를 가지기도 했다. |
양 회장은 사건 이후 지난 수개월 동안 사실과 다르다며 제대로 반론한번 펴 보지 못한채 전전긍긍해 왔지만 결국 진실은 밝혀졌다. 당시 사건은 일부 언론이 전후사정을 외면한채 지나친 한건주의에서 빚어진 오보였고 유족회와 잠시 관련했던 일부 인사들의 욕심이 빚어낸 어처구니없는 사건으로 일단락되었다. 특히 지난 78년에 일본내에서 국제문제를 다루는 변호사 업무를 개시한 다까키 변호사는 양 회장이 어려운 곤경에 처하자 “양순임 회장은 지난 92년부터 20년간 대일청구 보상 촉구운동을 함께해온 동지고 전후보상문제 해결을 촉구해온 한국인의 상징이다. 지난 65년 청구권 협정 체결 후 개인보상 청구 재판에서는 졌지만 한국인에 대한 피해보상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지난 2000년 독일의 경우 일부 보상한 전례가 있다. 일본도 그렇게 해야 한다.”며 양 회장에 대한 돈독한 우의와 신뢰를 보여주기도 했다. 양 회장은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의 경찰 수사를 충실이 받아 의혹과 혐의를 벗어난 상태다. 양순임 회장은 수개월동안 괜한 오해와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태평양전쟁유족회 활동이 위축되거나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이라 말하며 “이번 사건을 통해 태평양전쟁 유족회를 말살하려는 일부 언론사를 비롯해 일본우익단체와 정부내 역사왜곡세력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고 토로했다. 양 회장은 지금도 태평양 전쟁 희생자들의 대일보상 개별적 청구권 주장을 계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일본과 같이 2차 세계대전의 가해국이었던 독일은 전후 반세기 이상이 지난 2000년 8월 정부와 기업 공동 출연으로 강제동원 피해보상을 위한 재단을 세웠다. |
이 재단에 당시 독일 정부와 기업은 각각 25억5천만원 유로(3조8천억원)와 26억 유로(3조9천억원) 등 51억5천만 유로(7조7천억원)를 출연했다. 재단은 2001년 6월15일부터 폴란드, 오스트리아, 러시아, 체코 등 98개국에 거주하고 있는 강제노역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을 시작, 2007년 6월까지 166만5천여명에게 총 44억5천만 유로(6조7천억원)를 지급했다. 우리 돈으로 1인당 약 400만원 규모이지만 보상전례를 남긴 귀중한 사례가 되고 있다. 양 회장은 "지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지난 1965년 일본과 국교를 정상화하면서 8억 달러(유무상 포함)의 청구권 자금을 일본으로부터 받았는데 이 청구권 자금은 태평양전쟁 희생자들을 위한 보상 몫으로 산정된 것이었지만 현재까지 개개인에 대한 보상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양 회장은 “당시 한국 정부가 일본으로부터 청구권 자금을 받으면서 태평양전쟁 희생자들에 대한 `개인 보상"을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당시 박정희 정부는 이 자금으로 포항제철을 세우고 경부고속도로를 만드는 국가 기간 시설 확충에 사용했다”고 말하고 “이제 정부와 피와 같은 돈으로 기업을 세운 포스코 등이 유족들에게 답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강조했다. 양순임 회장은 유족회를 중심으로 지난해 9월부터 본격적으로 대일청구자금을 차용한 국내 100개 기업체를 상대로 청구소송에 들어가 조만간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한편 지난해 12월 18일 일본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도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일본 총리에게 정상 회담 내내 태평양 전쟁 피해자중 하나인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일본의 전향적 노력을 요구한바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