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후 세시, 프레스센터에는 수많은 기자들이 운집했다. 이번에도 안철수는 등장하지 않았다. 측근이라는 금태섭 변호사가 나왔다. 안철수 측의 공식 기자회견 치고는 등장한 인물이 조연급인 금태섭이라 긴장감은 다소 떨어졌다. 금태섭이 가진 기자회견 내용의 시작과 끝은 시종일관 “폭로”에만 있었다. 안철수는 가장 추잡하고 더티한 네가티브를 전면에 앞세우고 정치판에 첫발을 내딛으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귀와 눈이 의심스러지기도 했다.
물론 정준길 위원이 사려 깊지 못했음을 먼저 나무랄 수밖에 없다. 온갖 공학과 변절과 훼절이 난무하는 정치판의 어두운 속성을 잘 모를 수밖에 없었던 순진한 정치 새내기 정준길의 실착임은 분명하다. 금태섭이 기자회견을 한 그 순간, 안철수 지지 세력은 환호작약을 했다. 드디어 새누리당이 크게 한 건 터뜨렸다고 하면서 인터넷상은 안철수 지지 세력으로 도배를 하다시피 요란을 떨었다.
그리고 한 시간 정도 흐른 뒤에야 국회 기자회견장에 정준길이 나타났다. “서울대 법대 86학번 동기 동창이자 26년간 친하게 지내온 친구...”라고 시작하자 관전자들은 이 사건을 균형감 있게 보기 시작 한다. 이번 사건은 가장 상식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26년간 사귀어온 친한 친구 사이라면 할 말, 못 할 말이 없는 사이인 것은 기본 상식에 속한다. 금태섭이 “협박”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지만 26년간이나 친하게 지내온 사이에 다소 거친 표현이 있었다고 해서 그게 과연 협박이 되겠는가, 라는 일반적인 상식을 말함이다.
협박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상대방에게 공포심을 일으키게 만들 만 한 일체의 행위가 있었거나, 또는 상대방의 반항을 불가능하게 만들어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로 해악을 줄 정도의 위협이 있었을 때나 등장할 수 있는 단어일 것이고, 또한 보통 협박을 하는 상대를 보면 서로 간에 면식이 불충분한 사람들이 하는 법인데 26년간 친하게 지내온 친구에게서 받은 협박이라고 하는 금태섭의 발언은 상당히 오버된 측면도 있다고 본다. 그리고 친한 친구 사이라면 그 보다 더 심한 말도 얼마든지 오고 갈 수도 있는 것이 인생사이기도 하다.
금태섭의 기자회견을 보면 몇 가지 복합적인 노림수가 들어있었음을 발견할 수가 있다 최근 안철수는 여러 가지 의혹으로 궁지에 몰리고 있던 차였다. 지지율도 하락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안철수 측은 위기를 느꼈을 것이다.
그렇다면 국면전환을 하기위한 상황의 돌파도 필요했을 것이고, 이대로 가만있다간 그대로 당하고 말 것이라는 강박감도 느끼고 있었을 것이고, 여론의 지지가 현저히 떨어질 것을 우려도 했을 것이며, 하나, 둘 떨어져 나가는 지지 세력의 재결집이 필요하다고 내다 봤을 것이며, “이런 구태 정치를 쇄신하기 위해 내가 나설 수밖에 없다”라는, 대권 출마의 명분도 필요했을 것이다. 이런 고민거리에 노심초사하고 있던 찰나에 때마침 정준길 위원으로부터 무심코 걸려온 전화 한 통은 오랜 가문 끝에 내리는 한줄기 단비와도 같았을 것이며, 안철수 측에서 확 치고 나갈 탄약이 되기에 충분했던 것으로 짐작이 되기도 한다.
다시 한 번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 보더라도 정치 신인에 불과한 정준길이 무슨 위원장이라는 감투를 쓴 자도 아니며 많고 많은 위원 중 일개 위원 한사람에 불과한 사람이 과연 협박할 위치에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이번 사건을 보면 정치란 정말 무정하기도 하고 비정하기도 한 세계라는 것을 다시금 인식시켜 주고 있다. 이 사건은 며칠만 지나고 나면 안철수 측에는 역풍이 될 소재가 되기에 충분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이 사건을 보는 서울대 법대 동문들 사이에서도 금태섭이 지나치게 오버했다는 것이 대체적인 여론이라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안철수에게서 “어제 기자회견은 나의 뜻이 아니라. 금 변호사의 개인적인 발언이다” 라는, 코멘트가 어김없이 나왔다.
이번 사건을 보면 안철수 측이 얼마나 초조했으면 그랬을까 하는 연민의 정도 들지만, “26년 동안이나 친하게 지내온 사이였다면 그까짓 전화 한통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으니 그냥 웃으며 넘어가라”고 만류하지 못한 안철수의 그릇도 역시 금태섭 만큼이나 작다는 것이 확인이 되어 씁쓸하기만 하다. 어제의 기자회견이 박근혜의 지지율에는 전혀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견해가 일치했다는 점에서 “정치비정(政治非情)”이라는 한 편의 시츄에이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