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가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기자회견 전문을 입수하여 자세히 살폈다. 좋은 미사여구는 다 들어있었다. 대권에 출마하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그런 수준의 발언 정도는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복잡하고 다양한 구조 속의 현대 국가에서는 안철수가 국민에게 알린 정치권 변화에 대한 그의 인식은 이상향은 될지는 몰라도 현실적인 측면에서는 한참 빗나가고 있다.
두 가지만 짚어보자. 안철수는 야권 단일화 문제에 있어 한 가지 분명한 시사점을 던져주었다. 단일화에 대한 끈질긴 기자들의 질문에 딱 부러지는 답변은 끝내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독자적으로 끝까지 완주하겠다는 대답도 결코 하지 않았다. 때가 되면 단일화를 하겠다는 의도가 읽혀지는 대목이기는 하지만 그 시기가 지금은 아니라는 것이며 언젠가는 할지도 모른다는 여운을 남기게 해주는 안철수 특유의 간보기식 애매모호한 답변만을 했다.
그랬을 것이다. 문제인은 지금 컨벤션 효과를 누리고 있다. 지금 단일화 여부를 발설하면 이득을 보는 측은 문재인이 될 것은 불을 보듯 빤한 이치이고 손해를 보는 측은 당연히 안철수임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래서 단일화 득실 여부를 따져본 정치적 셈법에 따른 비켜가기였을 것이다. 안철수는 가장 순수한 척, 정치적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가장 정치적인 기준을 적용하여 말을 한 것이다.
따라서 적어도 공식 대선 일까지 안철수는 독자노선을 걷게 될 것이다. 그 기간 동안 안철수는 자신의 몸값 올리기에 주력할 것이다. 아울러 민주당에는 강력한 정치 쇄신을 주문할 것이다. 그것이 자신의 주가를 올리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 사니리오는 민주당에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는 것을 지적하고 자신으로 단일화가 되어야 한다고 호소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단일화 질문에 대한 함구는 그 점을 노린 발언이다.
안철수는 정치권 쇄신을 주문했다. 단일화를 위해선 정치권 쇄신이 우선이고 국민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두 가지 전제조건을 제시했다. 대선 초반전인 지금, 새누리당은 국민검사 안대희를 영입하여 고강도 정치쇄신 작업을 진행 중에 있다. 변화될 가능성이 민주당보다 훨씬 크다는 의미다. 그러나 민주당은 여러 계파가 복합적으로 결합된 당이다. 그만큼 당 체질의 변화가 새누리당 보다 더 어려운 일일 수가 있다는 것을 안철수가 간파했다는 의미일 지도 모른다.
안철수는 국민이 원한다면 단일화에 응하겠다는 원칙을 밝혔다. 일반적으로 국민이라고 하면 전체 국민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국민들의 절반 정도의 표심은 새누리당 박근혜에게 가 있다. 이들은 단일화를 원하지 않는 지지세력이다. 박근혜 지지세력을 제외한 나머지 절반 정도는 문재인과 안철수가 나누어 가지고 있다. 이런 분할구도 아래서 안철수가 제시한 두 번째 조건인 국민이 원한다는 조건에는 매우 건방진 교만함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안철수가 두 번째 조건에서 단일화를 원하는 국민이라는 말의 모순점을 지적하자면, 현재의 표심 분할을 먼저 살펴봐야 한다. 현재는 야당을 지지하는 전체 국민들의 절반 정도만 야권 단일화를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 현실적인 진단이다. 그래서 안철수의 두 번째 조건은 처음부터 모순이라는 것이다. 안철수가 민주당의 단일화에 응하겠다면 그것은 야당을 지지하는 세력과의 단일화일 뿐, 전체 국민을 팔아서는 안 되었던 것이다.
다음은 안철수 재단 설립에 기부하고 남은 절반의 안랩 주식도 “대통령이 된다면” 전제조건을 달고 기부하겠다고 밝힌 점이다. 처음부터 자신 소유 주식을 기부하겠다는 생각이 있었다면 재단 출범시 전부를 기부하는 것이 정도였다. 기부란 원래 그렇게 하는 것이다. 국민들의 눈치를 봐가며 찔끔찔끔하는 것은 기부행위 자체를 우롱하는 짓이다.
그런데도 그렇게 하지 않고 “당선이 된다면” 이라는 조건을 붙였다는 것은 대단 설립 당시부터 나머지 주식은 후일을 대비해 움켜쥐고 있었던 것으로 봐 줄 수밖에 없다. 얄팍한 계산을 처음부터 하고 있었다는 고도의 노림수로 보여 지기도 한다. 반대로 풀이하면 낙선한다면 기부하지 않겠다는 뜻과 같으니 진정성이 결여된 발언인 것이다.
안철수가 자신 소유의 나머지 절반 주식 기부하겠다는 것은 달리 해석하면 돈으로 표를 사겠다는 다른 표현도 들어있고, 국민에게 자신을 지지해 달라고 협박하는 의미도 들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결코, 대통령 출마를 선언하는 자리에서 나와선 안 될 발언이었던 것이다. 기부 행위란 마음에서 우러나와 하면 하는 것이고, 안 하면 안 하는 것이지 기부에 무슨 조건이 필요하단 말인가. 순한 양처럼 보인다고해서 다 순한 양이 아니듯 지금부터 정신 바짝 차리고 안철수를 살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