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의 정치 행간을 보면 어떨 때는 실소가 나오기도 한다.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이 폭로한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간에 있었다는 NLL 관련 문제의 대화록 발언으로 여,야 간에 극한논쟁과 진실게임을 며칠째 벌이고 있을 때도 안철수는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NLL 문제가 대선 정국의 길목에서 쟁점이 되었고 급기야 새누리당의 국정조사를 하자는 주장과 민주당의 정치음모라는 주장 등이 맞불려 첨예한 쟁점으로 부상하자 안철수는 자신이 끼어들 틈이 없다고 느꼈는지 깜박이 등도 켜지 않은 채 끼어들기를 시도했다. 그동안 요리조리 자를 재며 철저하게 양 진영의 눈치를 살피던 안철수의 입에서 오랜만에 나온 말이라는 것을 들어보니 참으로 가관이었다.
새누리당이 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하자고 주장하자 그때서야 안철수 진영에서는 “정상회담 대화록을 당리당략용으로 전락시키는 행위는 남북관계의 장래와 국제적 신뢰를 훼손시키는 중대한 문제”라면서 “이를 정쟁의 대상으로 삼는 행위에 대해서는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 나왔다. 철저하게 계산된 기회주의적인 처신이 아닐 수가 없다. NLL 문제는 우리의 해상 영토의 문제와 직결되는 중대한 사안이므로 누가 정권을 잡든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인 것이다.
대화록의 공개가 아무리 위법이고 국가기밀 사안이라고 해도 우리의 주권과 영토에 관한 사항이라면 공개를 해서라도 국민들 앞에 확실하게 매듭 지울 필요가 있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도 안철수는 NLL에 대한 정확한 자신의 소신은 밝히지 않은 채 지엽말단적인 대화록 공개를 두고 개탄할 일이라고 했다. 진정 개탄할 일은 안철수가 NLL이 우리의 영토냐, 아니면 그냥 그어 놓은 선이냐를 밝히지 않는 안철수의 어정쩡한 그 작태가 더 개탄스러운 일로 보인다.
이런 모습은 또 있다. 야당 진영에서는 박근혜를 공격할 때면 약방의 감초처럼 들고 나오는 이슈가 정수장학회를 사회에 환원하라고 주장하는 말이다. 영업의 시작은 원래 처음에는 다른 사람이 모르게 비밀로 하게 마련이다. 한겨레신문 소속의 누군가가 영업을 타진하는 장소에 비밀리에 잠입하여 녹취를 한 결과, 영업 기밀이 새어나가서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정수장학회에서는 지분의 일부를 팔아서 사회에 환원할 목적으로 상대방의 응수 타진을 MBC 측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보도가 나가자 야당에서 줄기차게 환원하라고 하면서 독촉을 할 때는 언제고 이제 막상 팔려고 하니 또 다른 딴지걸기를 하고 나선 것이다.
안철수 역시 아니나 다를까, 정수장학회 문제가 또 다른 쟁점으로 부상하자 끼어들기 좋아하는 안철수가 가만있을 리가 없었다, 안철수 진영에서는 “이런 일들이 우리가 극복해야 할 낡은 방식”이라면서 “공영방송의 민영화에 대한 논의는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진행돼야 하고 국민적 합의가 필수다. 은밀하게 진행될 일이 아니다. 국민이 볼 때 상식도 아니고 정의롭지도 못하다”고 덧붙였다. 정작 장학회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장학재단 재산을 매각하여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하는데 안철수는 가만히 구경하다가 또 뒤늦게 참견하고 나선 것이다.
이 또한 기회주의적인 처신이 아닐 수가 없다. 안철수는 현안 문제의 쟁점을 가장 먼저 들고 나온 경우가 한 번도 없다. 그저 남들이 싸우는 모습을 한참 구경이나 하다가 내뱉는 소리가 공자 같은 말만 골라서 한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중간지대에 어울리는 모습인가. 이러니 출마도 가장 늦었고 정책도 가장 늦게 발표한다. 큰 힘 안들이고 어부지리는 자신이 몽땅 챙기겠다는 아주 고약한 심보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안철수가 발표한 7대 경제 정책도 그렇다, 새누리당이나 민주당에서 먼저 발표한 경제정책 내용을 며칠 검토해 보았는지 모르지만 양쪽 중에서 좋은 것만 고르거나 아니면 그 중간쯤에 해당하는 정책을 만들어 발표한다는 것이다. 안철수의 행간이 매사가 이러하니 모 언론에서는 안철수를 가르켜 정치논평만 하고 있다는 지적마저도 나왔을 것이다. 이런 지적을 보노라면 안철수는 차라리 이번 기회에 정치논평가로 데뷔 하는 게 훨씬 더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