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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나라위해 목숨 받치신 고귀하고 숭고한 희생 헛되지 않게 해야

정부는 독립유공자 발굴 특별위원회 반드시 설치해서 문제 해결해야,

정병기 기자2016.08.25 11:28:09

정부는 나라위해 목숨 받치신 고귀하고 숭고한 희생 헛되지 않게 해야

 

정부는 독립유공자 발굴 특별위원회 반드시 설치해서 문제 해결해야,

정부 미발굴독립유공자 문제 우선 해결하려는 강력한 의지 보여줘야

 

일제강점기 악명 높던 마포 경성형무소 옥사자 발굴 서두르고 국민에게 알려줘야 한다, 언제까지 미루고 미루고 할 것인가? 독립유공자 문제해결에 당시 제적등본 호적관계 옥사기록 중요하게 다루어야 하며 정부의 귀책사유 있다면 솔직담백하게 사과하고 바로잡고 바로 세워야 올바른 역사가 될 것이다. 일제강점기 식민통치의 상징으로 악명이 높던 마포 경성형무소를 진정 아는가? 한번 투옥되면 모진 고문과 탄압 그리고 강제노역과 굶주림으로 죽어야 했던 곳이다, 언제까지 정부나 국가보훈처가 나몰라식으로 방치 할 것인가? 정부는 지금이라도 서둘러서 미발굴독립유공자 특별심사위원회를 구성하여 문제해결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나라위해 목숨을 받치고도 잊어지거나 잃어버리고 빛바랜 애국으로 남게 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본다,

 

정부는 금년이 광복 제71주년이다. 정부당국과 국가보훈처는 일제강점기 항일독립투쟁 옥사 독립유공자 발굴 특단 내려야 하며, 정부당국 미발굴독립유공자 특별위원회 설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언제까지 안일한 자세로 후손들에게 의존할 것인가? 정부의 자세를 바로 해야 할 때라고 본다. 옥사기록 분명해도 모든 서류 제출하지 않는다고 탈락시키는 현실은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정부의 서류관리 부실과 6.25전쟁으로 소실되고 남아 있던 귀중한 서류도 전두환정권이 소각폐기 조치한 것은 정부의 과실이고 잘못까지 후손들에게 그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정부의 도리가 아니라고 본다. 정부는 최선을 다하지 않는 독립유공자 발굴에 박차를 가해야 하루 것이라고 본다. 역사의 진실은 시대가 가고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할 것이라고 본다. 그 후손들은 잠 못 이루고 있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사실응왜 모르나?

 

'나라 위한 희생은 정부가 끝까지 책임지는 풍토와 정신 정착되어야n 한다.“ 금년이 광복 제71주년이자 국권강제강탈 106주년이 되는 해이다. 미발굴독립유공자의 후손으로서 지난 수십년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또 광복절을 맞은 것에 대해 마음이 착잡하기만 하다. 일제강점기 일제에 항거하며 조국 독립과 광복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건만 조국이 해방 된지 71년째인 현재까지도 정부는 그들을 왜 아직도 버리고 있는가. 그 수많은 세월 속에서 미발굴독립유공자 후손들은 여전히 가슴을 치고 한탄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는 국가보훈처는 환골탈태 국민과 후손들 앞에 거듭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일제 땐 독립운동가 가족이란 이유로 모진 박해에 시달렸던 자손들은 해방 이후 상당수가 배움의 길에서 멀어졌고, 오늘날 가난 때문에 먹고사는 일에 매달려야 하는 형편이다. 이렇다 보니 대개는 선조의 명예를 회복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여유가 없다.

 

일부 자손이 관련 자료 발굴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많은 자료가 소실 또는 소각처리 돼 찾기가 매우 어렵다. 독립운동 관련 문서는 역사적 문서로 반영구적인 보존서류임에도 그 중요성이 인식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고 개탄스럽다. 진정한 광복의 의미 찾기 위해서는 미발굴독립유공자 문제해결과 친일청산 우선돼야 한다. 자손이 자력으로 찾을 수 있는 자료는 그저 전해 오는 말이거나 호적에 형무소 수형 기록이 있는 것이 전부다. 그러나 해당 부처인 국가보훈처에서는 독립유공자 후손들에게 수형인 명부나 당시의 재판 서류 등 무리한 상세자료를 요구하고 있다. 이제는 정부가 독립유공자 가족이 아니라는 자료를 내놓아야 하지 않을까 반문하고 싶은 심정이다. 8.15광복의 기쁨과 진정한 독립정신을 계승하고 진정한 민족의 광복절이 되려면 친일역사 청산과 독립유공자 발굴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정부가 앞장서 국내외에 흩어진 관련 자료 발굴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를 위해 대통령 직속의 특별위원회 설치를 고려해 보는 게 어떤가 한다. 참여정부하의 과거사진상규명특별위원회 등과 같이 대통령 직속의 기관을 설치해 좌우익을 떠나서 일제에 항거했던 유공자들에 대한 발굴을 적극 지원하기 위해서다. 이는 역사적 현실을 감안한다면 당연지사라고 본다. 정부는 정부다운 조치와 배려가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다,

 

이는 과거 일제하 독립운동 자료는 국내에서는 거의 대부분 발굴이 된데 반해 미국 국립문서 보관소나 일본국 동경도서관, 또 중국 등에 보관된 자료들에 대해서는 체계적인 발굴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제는 후손들 차원의 자료 발굴이 아닌 정부가 나서야만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시한번 강조하건데 올해만큼은 정부가 독립유공자 발굴에 나서 이 문제를 해결 해야만 할 것이다. 미발굴독립유공자 문제가 더 이상 방치하거나 지연해서는 안 되고 나라위한 희생은 정부가 끝까지 책임지는 풍토와 정신이 반드시 정착 되어야만 한다고 본다. 마포구 공덕동 105번지가 진정한 민족의 독립성지이다. 일제의 모진 탄압과 고문도 그리고 굶주림도 독립의지를 꺾지 못했다. 수많은 무명의 애국지사 독립투사 숨결이 살아있고 호령하시던 목소리 담겨있는 곳 죽어서도 어찌 공덕리 경성감옥소를 잊겠는가? 이곳에 경성형무소 역사관 건립해서 후세들에게 역사의 현장 알려야한다. 일제 강점기 민족의 독립과 광복을 위해 수많은 애국지사 독립투사들이 일제의 모진 고문과 탄압 그리고 굶주림 잔악한 만행으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한 역사의 현장이 역사의식 부재로 현재 서울서부지방법원 검찰청이 들어서 있다.

 

나라를 찾기 위한 숭고한 애국정신과 고귀한 희생이 역사 속에 묻혀가고 잊어버린 애국이 되고 있어 안타깝다. 정부 관료의 역사의식부재로 친일청산을 가로막는 엄청난 오류를 범했다. 먼 훗날 후손들의 냉엄한 평가가 있을 것이라고 본다. 정용선 증조부님은 이곳에서 41세의 젊은 나이로 경성형무소 1928520일 오후 315분 옥사(제정호적 기록) 증손자 지난 36년 자료 발굴 노력 기울이고 있으나 쉽지 않아 가슴치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정부는 이제라도 나라위해 목숨 받치신 분들 중 경성형무소나 기타 형무소의 옥사자분들에 대해서도 독립유공자 심사 특별위원회를 설치하여 서훈을 인정하고 그 명예를 찾아줘야 할 것이다. 언제까지 거부할 것인가 이는 포기하라는 것은 아닌가? 반문하고 싶다. 필자는 지난 39년간을 일제강점기 나라의 독립을 되찾기 위해 항일독립투쟁인 군자금운동을 하시다 증조부 정용선 선생께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하시다 경성형무소에 투옥돼 옥사해 그동안 39년간 노력했으나 그동안 역사의식의 부재와 자료 관리의 허술함으로 인해 아직까지 거증자료 부족으로 공로를 인정받지 못해 국립묘지에 가묘도 안장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말이나 구호보다 실질적인 독립운동 자료발굴에 앞장서야 하며 올바른 식민지의 역사를 사실대로 가르쳐 과거를 교훈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지금이라고 반드시 민족의 성지인 공덕동에 마포 경성형무소 역사관을 건립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역사는 묻는다고 묻히지도 않지만 언젠가는 살아 세상이 알게 될 날이 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나라사랑이나 애국은 빈말이나 구호가 아니라 실천이 우선돼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글쓴이/정병기<미발굴독립유공자 후손. 칼럼니스트>

 

증조부 독립운동 관련 자료찾아 36년 고군분투

 

정용선(鄭溶璿, 1883~ 1928)은 한국의 독립운동가이다. [편집] 생애 일제시대 경성형무소(현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한 독립투사. 정용선의 행적에 대해 구여순이 1919228일 동생 은득(銀得)의 요청으로 33일 상경하여 3·1운동에 참가하고 곧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312일 고향으로 돌아와, 동지 최정학(崔正學이우식(李祐植김봉연(金琫淵정용선(鄭溶璿) 등과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만들어 배포하고 14일 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는 사실이 문서에 남아있다. 하지만 결정적인 증명 서류가 없어 국가적인 유공자로 공인은 못 받은 상태이다. 그의 증손인 정병기(2010년 현재 53)아버지와 친척 등의 증언을 종합하면 증조부인 정용선(1883년생) 선생은 1900년대 초부터 1916년까지 고향인 경북 봉화군을 중심으로 독립군 군자금 모금 활동을 했던 독립운동가가 확...실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씨에 따르면 독립 자금을 모으기 위해 친일파의 집을 털고 일본 주재소를 습격하는 등 위험천만한 활동을 서슴지 않았다는 그의 증조부는 1916년 갑자기 자취를 감추었고 10년 가까이 지난 1928년 경성형무소에서 옥사했다는 통지서 한통만 날아왔다고 한다. 결정적인 증거로 그는당시 반일 활동가를 가두던 경성형무소에서 장기복역하다 숨졌다는 것 자체가 증조부가 독립운동에 헌신하다 희생됐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 증조부로 인해 일제로부터 모진 탄압을 받자 이를 견디지 못한 일가친척들이 증조부 이름을 집안에서 파버렸고 증조부가 실종된 후 일제의 화가 미칠까 두려워한 가족들이 나서서 증조모를 개가시켰다는 사실은 독립운동을 했음을 뒷받침하는 명백한 정황증거라고 강조하고 있다. 실제 호적등본을 보면 증조모는 독립투사의 아내였던 것을 감추기 위해 본명인 박열이에서 정열이로 개명까지 했다. 그러나 일제가 만든 호적에 증조부가 경성형무소에서 병으로 사망했다는 기록 외엔 독립운동에 가담했다는 것을 증명할만한 서류는 남아있지 않다. 정병기는 증조부가 독립유공자임을 인증하기 위해 1993년 미국 의회도서관에 편지를 띄워 수형인 명부가 담겨 있을지도 모르는 마이크로필름 500장을 200달러를 주고 사오기도 했다. 일본 외무성에 수차례 서신을 띄우기도 했지만 결정적인 사료를 찾는 데는 실패했다. 2009년엔 국가를 상대로 행정소송까지 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국가의 독립유공자 자격 인증에 대해 정병기는 일제시대 형무소 수형인 기록을 지난 8012월 실수로 모두 불살라버렸던 정부가 이제 와서 독립운동으로 수감됐다는 걸 증명할 문서를 가져와야 독립유공자로 인정해준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더욱이 일본 외무성은 1995년까지 조선인 수형인 명부를 보관했지만 우리 정부는 단 한번도 그 서류를 요청한 적이 없다고 하고 있다. 객관적인 인증을 위해 더더욱 증빙자료가 필요한 현실이다. [편집] 참고자료/분류: 1883년 태어남1928년 죽음 한국의 독립운동가 사형된 사람

http://www.youtube.com/watch?v=xSxb0IcQq1U

KBS 독립운동가 기록찾기 30년의 노력

www.youtub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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