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용(李址鎔)은 1887년 문과에 급제하였고, 1895년 칙명을 받아 일본을 유람하고 돌아왔으며, 궁내부 협판을 역임하다가 1901년 주일 공사를 지냈다. 1903년 10월 무렵 일본 측과 협상하여 대한제국이 일본을 돕도록 힘썼으며, 1904년 2월 외부대신으로 일본 공사 하야시 곤스케로부터 1만 엔을 받고 한일의정서 조인에 협조했다. 이지용은 법부대신, 판돈녕부사(判敦寧府事) 등을 거쳐 1905년 내부대신으로 을사늑약(乙巳勒約)에 찬성, 늑결(勒結)함으로써 을사오적의 하나가 되었다.1910년 8월 경술늑약(庚戌勒約) 늑결(勒結) 후, 일본 정부로부터 훈1등 백작 작위를 받고 총독부 중추원 고문(中樞院 顧問)에 임명되었으며 정 3위 훈 1등으로 1928년 사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