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광범(徐光範)은 1879년 김옥균, 박영효와 개화당을 조직하였다. 1882년 4월 김옥균과 함께 일본의 국정을 시찰하였고, 9월 박영효의 종사관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신진 문물을 견학하였다. 1883년 6월 보빙사 민영익의 종사관으로 미국의 주요 도시를 시찰하였고, 유럽 각국을 순방한 후 1년 만에 귀국하였다.1884년 12월 근대식 개혁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갑신정변(甲申政變)을 거사하였다. 1894년 12월 2차 김홍집 내각의 법부대신(法部大臣)으로 기용되었으며 내부대신인 박영효와 2차 갑오개혁(甲午改革)을 적극 추진하였는데 사법제도의 근대화에 노력하여 재판소 구성법, 법관양성소 규정 등을 제정하고 참형(斬刑)이 비인도적임을 지적하여 교수형(絞首刑)제도로 대체하였다. 4차 김홍집 내각(1895. 10)에 학부대신(學部大臣)에 기용되었다가, 12월 주미특명전권공사로 활약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