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필(徐載弼)은 1884년 12월 갑신정변에 가담하였고 전영(前營) 정령관(正領官)으로 임명되어 활약하였으나 정변의 실패로 일본을 거쳐 1885년 미국으로 망명하였으며 1893년 대학을 졸업하고 의사 면허를 취득하였다.1894년 갑오개혁이 단행되자 1895년 12월에 귀국하였으며, 1896년 1월 중추원(中樞院) 고문에 임명되었다. 서재필은 1896년 4월 정부 예산을 얻어 독립신문(獨立新聞)을 발간하는 한편, 이상재(李商在)·이승만(李承晩) 등과 독립협회(獨立協會)를 결성하고 모화관(慕華館)을 인수·개축하여 독립회관으로 하였다. 1897년 대한제국의 독립을 선언하기 위하여 영은문(迎恩門)을 헐고 그 자리에 프랑스의 에투알개선문을 본뜬 독립문(獨立門)을 세웠다. 펜실베이니아에서 병원을 개업하고 있다가 3·1 대한광복운동 소식을 전해 듣고 대한제국 문제를 세계 여론에 호소하는 한편 한국친우회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후원하였다. 상해 임시정부의 외교위원장 자격으로 1922년 워싱턴군축회의에 독립을 청원하는 연판장을 제출하고, 1925년 호놀룰루의 범태평양회의에 한국 대표로 참석, 일본의 침략을 폭로·규탄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