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일(徐一)은 1911년 간도로 가서 명동학교(明東學校)와 청일학교(靑一學校)를 설립했으며 독립군단인 중광단(重光團)을 조직하고 단장이 되었고 1918년 간도와 러시아령에 있는 독립운동가들과 함께 독립전쟁으로 민족의 독립을 쟁취하겠다는 취지의 무오독립선언서(戊午獨立宣言書)를 발표했다. 1919년 3월 중광단을 정의단(正義團)으로 개편하여 김좌진을 맞아 전투태세로 개편하고 단원을 모집하는 한편 무기도 구입하여 독립군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8월 정의단은 무장독립군을 보유한 항일단체이자 북간도 전지역을 행정구역으로 삼는 행정부를 겸비한 군정부(軍政府)로 개편·발전되었다. 12월 상해 임시정부와 연계하여 군정부를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로 개칭하면서 총재에 취임했다. 서원(署員)은 1,600명 정도로 러시아에서 구입한 무기로 무장했고, 속성(速成) 사관학교를 설치하여 훈련을 시키는 한편 경찰 사무와 정보 연락을 했으며, 지방산업을 진흥시키며 소학교와 야간강습소를 설립하였다. 1920년 김좌진과 함께 청산리전투에서 일본군을 크게 무찔렀으나 일본군의 대토벌작전으로 인해 주력부대를 북간도 미산현 당벽진(當壁鎭)으로 이동시켰다. 홍범도의 대한독립군, 서로군정서군의 이청천 부대, 안무(安武) 부대, 광복단 등의 여러 부대를 통합하여 대한독립군단(大韓獨立軍團)을 조직하고 총재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