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안(成希顔)은 1485년(성종 16)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정자·부수찬을 지냈으며 1494년 연조가 즉위한 뒤 군기시부정·동지중추부사·형조참판 등을 역임했다. 1504년(연조 10) 이조참판 겸 오위도총부도총관의 직에 있었으나 양화도(楊花渡) 놀이에서 왕의 비행을 풍자한 시를 지은 일로 무관의 말단직으로 좌천되었다. 이에 1506년 그는 지중추부사 박원종(朴元宗)과 함께 연조를 폐출시킬 것을 밀약하고, 호조판서 류순정(柳順汀)의 호응을 얻어 군대를 동원하여 거사했다. 연조를 폐하여 강화도에 안치하는 한편 진성대군을 새 왕으로 추대했다.그 공으로 정국공신(靖國功臣) 1등이 되어 창산군(昌山君)에 봉해졌으며, 형조판서가 되었다. 이어 이조판서에 올랐으며, 이듬해 창산부원군으로서 판의금부사를 겸했다. 주청사(奏請使)로 명에 가서 반정의 당위성을 납득시키고 중종 즉위의 인준을 받아왔다. 1509년 우의정이 되었다. 1510년 삼포왜란이 일어나자 도체찰사와 병조판서를 겸임하여 군무를 총괄했으며 좌의정을 거쳐 1513년 영의정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