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정든 의회를 떠나던 날 하원 의사당은 감동과 눈물의 바다로 변했다. 민주당 소속 동료의원 스태니 호이어는 눈물을 글썽이며 “이 하원의 탁월한 딸”이라고 말했다. 그녀가 이날 아침 하원에 도착하자 모든 의원들이 그녀를 둘러쌌다. 일부 의원들은 그녀의 손을 잡고 놓지 못했으며 더러는 뺨에 키스도 했다. 기퍼즈와 가장 절친한 플로리다 출신의 공화당 소속 동료 여성의원 데비 웨저먼 슐츠는 기퍼즈를 얼싸안고 줄곧 그를 부축했다. 어머니 글로리아 여사와 우주인 남편 마크 켈리는 방청석에서 기퍼즈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날 의사당에는 거의 모든 의원들이 참석했다. 민주당의 원내 총무 낸시 펠로시 의원은 고별사에서 “이 의사당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가장 영롱한 별”을 보내는 심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퍼즈의 용퇴 덕분에 의회는 한층 높아진 존엄을 갖게 되었으며 미국과 의회는 영원히 그녀를 기릴 것”이라고 울먹였다. 버지니아 출신 공화당 의원 에릭 캔터는 “오늘의 작별이 결코 마지막이 아니며 우리는 기퍼즈의 새로운 미래와 다시 만날 것”이라고 말했다. 많은 위원들이 기퍼즈에게 다가가 “당신을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자 기퍼즈도 “저도 마찬가지”라고 화답했다. 1년 전 애리조나 주 턱슨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으로 6명이 죽고 10여 명이 부상했다. 이 때 기퍼즈 의원도 머리에 총상을 입고 수차례의 수술과 재활치료를 통해 거의 정상을 회복했다. 이 사건은 당파싸움으로 여념이 없던 미국 정계에 경종을 울렸다. 문명에 대한 야만적 도전에 너무나 무심했다는 자각이 미 정계를 흔들었다. 기퍼즈는 자신의 마지막 법안으로 불법 입국자와 마약 밀수를 단속하기 위한 ‘국경보안법’을 제출했다. 그녀가 마지막 표결권을 행사한 이 법안은 그녀가 사임하던 날 하원에서 만장일치로 가결되었다. 상원도 조속한 통과를 약속했다. 이 법 덕분에 미 국토안보부는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불법 밀수되는 마약을 더욱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기퍼즈는 동료 여성의원 슐츠가 대독한 사임사를 통해 "나는 지난 1년 동안 강력한 미국을 만드는 곳이 어디이며 가장 악랄한 공격으로부터 미국의 가치를 보존하는 길이 무엇인가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기퍼즈는 ”혼신의 노력으로 재활치료를 열심히 해서 의회에 돌아오겠다”는 말로 작별인사를 마감했다. 기퍼즈가 하원의장 존 베너에게 다가가 사직서를 제출하자 베너는 그녀를 포옹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이날 일부 방송이 생중계한 기퍼즈의 고별식은 모든 미국인들을 감동 속으로 몰아넣었다. 이제는 정쟁을 중단하고 문명에 대한 도전에 초당적 대처를 할 때가 되었다는 공감으로 의사당은 숙연해졌다. 기퍼즈의 아름다운 퇴장은 수많은 정치인들에게 의미 있는 메시지를 주었다. 의원들은 기퍼즈의 ‘용기’를 높이 평가했다. 무슨 용기인가? 공직자의 윤리와 책무를 고수하려는 맑은 영혼의 결단을 내린 용기이다. 기퍼즈는 사실 정치적으로나 법적으로 의원직을 사임할 결격사유가 없다. 그럼에도 그는 사임했다. 다소 어눌해진 말투로 의정을 수행하는 자체가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기퍼즈의 결단은 선거법 위반으로 3000만 원의 벌금형을 받고도 서울시 교육감 자리에 복귀한 곽노현의 처신과 대조된다. 그는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아내겠다고 말했다. 무죄추정의 원칙을 역으로 해석하면 그는 최종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을 때까지는 죄인이다. 역겹기는 박희태 국회의장의 처신도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의 보좌관들이 전당대회에서 돈 봉투를 뿌린 사건이 터져도 “나는 모르는 일”이라며 국회의장 자리에서 버티고 있다. 1972년 워터게이트 도청사건으로 기소된 닉슨은 “나를 사랑한 사람은 물론이고 나를 증오한 모든 사람들에게도 무한한 감사를 표시하며 대통령직을 사임한다”는 하야성명을 남기고 퇴임했다. 그는 그 후 9권의 회고록을 집필하여 미국의 미래를 위한 아낌없는 충고를 남겼다. 닉슨의 정치인생은 오히려 퇴임 후에 더욱 빛을 발했으며 그 덕분에 가장 존경받는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정치인의 진퇴에는 엄격한 도덕률이 수반된다. 곽노현과 박희태가 기퍼즈의 퇴장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궁금하다. 혹시 “나와는 상관없는 일”로 치부했다면 한국의 정치미래는 암담하다. 조홍래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