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3고시 외에도 회계사(계리사 또는 CPA)도 고시로 분류해 3고시 중 양 고시에 합격하고 회계사까지 합격해도 고시3관왕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들 3고시에 모두 패스하면 그의 인생은 탄탄대로에 놓일 것은 불문가지의 사실이다. 이렇게 어렵다는 3고시에 모두 패스한 ‘3관왕’이 여럿 있다. 현재 알려진 고시3관왕 출신으로는 장덕진 전 장관을 비롯해 박찬종, 송옥렬, 이정우, 김기영, 진행섭, 고승덕, 김관영, 강용택, 손태원, 김태원 등이 있다. 이들중 대부분은 변호사 활동 등으로 3고시 중 신분상승이 가장 확실한 법조계 쪽으로 한 우물을 파고 있으나 일부 몇몇은 정치권 진입 후 전국적인 인물로 부각되기도 했으나 고시3관왕의 영예만큼 정치적인 부귀영화까지 다 누리지는 못하는 듯 하다. 한국 최초의 고시3관왕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이끌던 제3공화국 당시의 장덕진 전 농림부장관이다. 그는 1960년부터 62년에 걸쳐 3대 고시인 사법, 행정, 외무고시에 모두 패스하는 최초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장덕진 전 장관...최초 고시3관왕 고려대 법대를 졸업한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처조카사위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고승덕 전 의원의 자서전인 ‘포기하지 않으면 불가능은 없다’에서 최초 고시3관왕으로 ‘J"장관으로 묘사된 장본인이다. 장 전 장관은 3고시를 패스한 후 그의 인생은 한마디로 장밋빛 인생이었다. 젊은 40대 나이에 장관을 지내고 국회의원을 지냈는가 하면 박 대통령 가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이후 31, 32대 대한축구협회장을 거쳐 2008년엔 축구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공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때 대륙종합개발 회사를 설립, 대중국 사업에 투신하기도 했으나 말년에 가서는 고시3관왕다운 성공을 이루지는 못한 듯 하다. 박찬종 전 의원도 고시3관왕이다. 그는 사법과 행정고시에 합격했고 CPA에 합격해 3관왕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서울대 재학 중에 고시3관왕이 된 그는 검사생활을 하다가 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 여당인 민주공화당 공천을 받아 부산에서 출마, 정계에 입문했다. 그는 공화당내 정풍운동을 주도하기도 해 여당내의 야당으로 불리기도 했고 한때 정치규제대상에 포함돼 11대 국회의원선거에는 출마하지 못하게 된 후 유신정권에 참여한 과거를 반성하기도 했다. 미문화원점거농성사건과 박종철군 사망사건도 직접 맡아 진실을 파헤치는 등으로 인권변호사, 민주화 운동가로서의 업적을 인정받아 1987년 제 1회 아키노자유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고시3관왕 첫 대선주자된 박찬종 이후 정치활동을 위해 신정치개혁당을 창당, 대선에 출마하기도 했으며 95년 초대 민선 서울시장선거에 무소속으로 나서기도 했으나 낙선했고 15대 대통령 선거 당시에는 한때 부동의 1위로 앞서 갔으나, 대권을 거머쥐지 못하고 점차 사람들의 뇌리에 잊혀져 가는 듯 했다. |
서울대학교 사회계열에 입학, 법과대학을 수석 졸업한 고승덕 전 의원도 대학 재학 중에 사법시험 최연소, 외무고시 차석, 행정고시 수석 합격한 것으로 유명하다. 컬럼비아 대학교 로스쿨에서 JD (법무박사) 과정을 졸업했고 미국 4개 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 세계 최대의 로펌인 베이커 & 맥켄지에서 2년간 변호사로 활동하는 등 국내 최고의 두뇌를 자랑하기도 했다. 귀국 후 판사를 거쳐 이후 변호사로 재직했고 SBS의 법률 교양 프로그램인 《솔로몬의 선택》에 변호사로 출연하였고 2007년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BBK 주가 조작 사건 의혹에 대한 변호인으로 활동한 바 있으며, 제18대 총선에서는 서울 서초 을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판사로 재직 당시 박태준 자유민주연합 총재이자 포스코 전 회장의 딸과 결혼해 세간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으나 자신의 정계진출을 막는다는 이유 때문에 이혼을 해 비난을 받기도 했다. 세계최대 로펌 변호사 활동한 고승덕 초선 국회의원으로서 나름대로 열심히 활동했으나 2012년 4.11 총선을 앞두고 공천가능성이 희박해지자 박희태 전 대표의 돈봉투 사건 폭로를 해 한때 전국적인 이슈를 몰고 왔지만 정작 본인은 총선에서 공천조차 받지 못해 정치권에서 밀려나 정치적인 재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또 한사람 주목받는 인물이 있다. 사법, 행정, 회계사 합격으로 3관왕이란 화려한 이력을 마다하고 지난 4.11 총선에서 전북 군산에 민주통합당 후보로 출사표를 던져 국회의원이 된 김관영 의원. 지난 83년 성균관대학에 들어가 민주화 투쟁에도 참가했고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를 거친 김 의원은 40대의 재경부 금융통서 로펌 "김앤장" 등 화려한 이력을 소유한 인물이다. 그는 초선 의원이지만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을 맡았고 최근 민주통합당 당대표선출을 앞두고 ‘이-박(이해찬-박지원)연대’에 반대한 21명의 초선의원 중 한사람이기도 하다. 막 정치판에 발을 디딘 그의 앞날을 아무도 예단하지는 못하지만 고시3관왕으로 정치에 참여한 선배격인 장덕진, 박찬종, 고승덕 전 의원과는 다른 결과를 보일 수 있을지 관심거리다. 고시3관왕이 된 인재들 중에서 일부는 여전히 현 정치권의 콜을 받고 있지만 한 우물만 파는 사람도 있다. 이정우 변호사가 그중 한사람이다. 서울대 법대를 다녔고 서울대 첫 직선제 총학생회장을 지낸 것으로도 유명한 그는 유시민, 김영춘, 송영길 등과 함께 80년대를 주름잡은 전설의 운동권 출신이기도 하며 한총련의 전신인 전대협 창설자로 알려져 있다. 이 변호사는 지난 서울대 4년 재학시 총학생회장 선거에 출마,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남북학생회담 개최 추진」이라는 공약을 내세워 당선됐으나 당선 4일만에 「서울대 프락치사건」으로 제적, 1년 6개월의 형을 복역하기도 했다. 이 변호사는 지난 2011년 4.27 경기도 분당 재보선에 민주당 공천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으나 현재 변호사 활동에만 전념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