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에서 열사(烈士)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나라를 위하여 절의를 굳게 지키며 정성을 다하여 싸운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한편 의사(義士)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의협심이 있고 절의를 지키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똑같은 애국지사지만 안중근에게는 의사라고 칭하고 유관순은 열사라고 칭한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 우리나라에는 열사가 많아도 너무 많이 탄생했다. 걸핏하면 열사가 되는 나라다.
사람이 태어나서 부모에게 가장 막심한 불효를 저지르는 행위가 부모보다 자식이 먼저 목숨을 스스로 끊는 행위일 것이다. 참척(慘慽)이라는 말의 의미는 자손이 부모나 조부모에 앞서 죽는 것을 말하며, 악상(惡喪)이란 부모에 앞서 죽은 젊은 사람의 장례의식 때 사용하는 말이다. 흔히 상가에 문상을 가다보면 젊은 사람이 우연히 사고를 당했거나, 예기치 못한 병환 등, 어쩔 수 없는 변고로 인해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도 부모들은 불효자식이라고 울부짖으며 통곡한다.
하물며, 젊은 나이에 자신의 몸을 자신의 의지에 의해 분신을 하거나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면 이것은 불가피하게 죽은 것보다 더 큰 불효막심한 행위가 아닐 수가 없다. 민주화가 정착된 최근 수십 년 이래 사회 각계에서는 각각의 다른 이슈와 각각의 다른 이유들로 인해 스스로의 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자신의 고귀한 목숨을 끊는 극한적인 사례들이 많이 발생했다.
가령, 전교조 소속의 어떤 교원이 전교조 활동을 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면 이 사람은 언젠가부터 ‘교육열사’라는 칭호가 붙어져있고, 무슨 시위를 하다가 죽으면 ‘민주열사’가 되고, 환경운동을 하다가 스스로 죽으면 역시 환경열사가 된다. 자신이 소속된 회사에서 임금인상과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다가 뜻대로 되지 않아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자신의 신체에 기름을 붓고 불을 댕겨 분신자살도 시도한다. 이렇게 죽은 사람의 이름 뒤에는 언제나 ‘노동열사’라는 칭호가 붙어있다. 특히 우리나라에는 노동계에 열사가 많다는 점이 특이하다.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자, 이들이 과연 “나라를 위하여 절의를 굳게 지키며 정성을 다하여 싸운 사람”이라는 열사의 기준에 어떤 점이 부합하는가. 회사를 상대로 자신들 개개인의 권익과 이익을 위해 투쟁했을 뿐인데도 툭하면 열사의 칭호를 붙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생산된 열사가 근래에 와서 무척 많이 생겨났다. 죽은 뒤에 붙여주는 열사라는 칭호가 살아 있는 부모님께 불효 하는 것 보다 더 귀중한 가치란 말인지 이해가 잘 되지를 않는다. 물론 당연히 열사라고 호칭해 줘야 할 만한 대상자들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나라 노동 시위현장을 보면 왠 열사가 그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제3자의 객관적인 입장에서 보면 시위의 목적이 자신들의 임금인상과 근로조건 개선이 되어야 함에도 자신들의 요구조건과 전혀 상관이 없는 정치투쟁을 일삼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그리고 온통 선동 선전 구호들로 넘쳐난다. 분위기가 극도로 에스컬레트 되기 시작하면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는 감정 약한 사람의 과격한 행동은 언제든지 일어나게 되는 법이다. 여기도 열사, 저기도 열사, 열사라는 고귀하고 명예로운 칭호가 마치 걸레조각처럼 될 정도로 흔해 빠져있다 , 이러니 어느 네티즌은 ‘열사는 무슨 열사 개뿔이지“ 라는 소리도 다 나오고 있다. 이왕에 열사 얘기가 나왔으니 내친김에 “열사칭호 금지법”이나“ 분신자살 금지법”이라도 만들어야 할지도 모를 세상이 되어버린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