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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대한민국 (大韓民國) 최근세 해군(海軍) 승전사(勝戰史)-심동보 제독

[더타임즈 정성환 기자]    오는 26 일은 대한민국 해군의 초계함 천안함(PCC-772)이 폭침된 지 14년 되는 날이다. 북한 잠수정의 기습 어뢰공격으로 침몰하여 승조원 104명 중 46명이 전사하고 58명이 구조되었다.전사자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과 생존 장병들에게 위로를 보낸다.


적에 대해 무지하고 나태하면?  죽임을 당한다.

전쟁에 2등은 없다죽음이 있을 뿐이다.

전쟁에서는 적()과 아군(我軍) -두 개의 무리 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북한지역에 있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서로 체제 경쟁 중이고 과 기름 관계로 공존이 어렵. 두 체제 중 하나는 소멸되어야 할 치열한 전쟁 중에 있다.

북한지역에 있는 그들은 생산과 건설이 주업(主業)이 아니다

그러면 농업도 주업이 아닌 그들의 주업은 무엇인가?

남의 것(특히 대한민국)을 빼앗아서 먹고 살겠다는 날강도 발상을 하고 있는 자들이다.

 

이 전쟁에서 지금 대한민국 내부에는 적()의 대리인으로 보이는 자들이  망나니 짓을 하며 온 나라를 거덜내고 있는데도 제대로 손 못 쓰고 패배일색으로 가고 있다.

무능(無能)인가? 안보에 대한 무지(無知)인가?

 

적과 안보에 대해 무지하고 나태하면 대한민국이 어떻게 되는가?

오늘 일전이 있다는 결기와 필승(必勝)의 신념은 있는 것인가?

왜 반드시 이길 생각을 못하는가?  이기는 전략·전술과 승전(勝戰) 사례를 몰라서인가?

 

5.18 광주사태가 일어난 해인 1980122일 남해상에서 북한이 남파한 무장간첩선을 대한민국 해군(海軍)이 일격에 격침시킨 통쾌한 승전사(勝戰史)가 있었다.

 

당시 승전(勝戰)의 주인공은 유도탄고속함(PGM-358) 백구-58함의 포술장이었던 심동보 제독(해사31)으로 그의 신화적 전투일화는 해군일화 제8(20171111일 해군본부 발행)에 소개되었다.

   

 다음은 해군 일화 제8268~276쪽의 위기 앞에 깨어나 온몸을 맞서라. 그래야 승리를 선물로 줄 수 있다와 해군 리더십 논총 제2(20081230일 해군충무공리더십센터 발행) 379~443쪽에 소개된 심동보 제독의 실전 리더십 10계명, 그리고 심동보 제독의 필승 리더십(2017.7.20. 나남출판사 발행) 189~201쪽에 소개된 기적을 낳은 전투 초탄 명중‘“을 인용하여 싣고자 한다.

 

일선 장병들과 국가안보에 책임있는 모든 사람들,그리고 대한민국을 지키는 애국민들이 심동보 제독이 실전에서 적용하고, 제정한 전투구호 오늘 일전이 있다와 같은 각오로 해군의 승전사(勝戰史)를 학습 해서 좌파들과의 싸움에서 밤낮 얻어 터지는 형국에서 벗어나 勝戰(이기는 전쟁)기록들을  만들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 敵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장수 심동보  제독)

다음은 심동보제독이 당시 상황을  기술한 것을 그대로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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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낳은 전투: 북한 무장 간첩선 초탄 격침

         - 심동보


44년 전인 1980년 12월 2일 새벽에 일본 영해에 근접한 대마도 서남방 해역과 남해도에서 각각 해상전투와 육상전투가 벌어졌다. 우여곡절 끝에 북한이 침투시킨 무장 간첩선이 격침되고 특수 공작원 9명이 간첩선과 함께 수장되거나 육상에서 사살되고, 육군 39사단 남해대대의 8중대장을 포함한 아군 3명이 전사하였다.

본인은 당시 백구-58함(PGM-358)의 포술장으로서 작전에 참가하여 무장 간첩선을 격침시키는 전공을 세워 화랑무공훈장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그러나 당시의 작전경과를 회고하건데 보람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한편으로 기적과 같은 전투기록이 널리 공유되어 교훈이 되지 못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해군본부와 합동참모본부에 당연히 있어야 할 전투기록인데도 유독 1980년 12월 2일에 있었던 전투기록만은 2008년 전역시까지 찾을 수 없었다. 휴전 이후 해당 작전 이외의 모든 대침투작전 기록은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관리되고 있었음에도 해군과 합참에 없는 기록을 수소문 끝에 육군 39사단 남해대대에서 작성하여 보관 중인 ‘적 침투사례'(‘짝금전투’)를 찾을 수 있었고, 최근에는 해군본부 해군역사기록관리단이 보관중인 ‘해상 대침투 작전사(1988.1.25)’에 수록된 ‘남해도 근해에 침투한 무장간첩선 격침작전’ 기록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의 전투경과를 본인의 기억과 전술한 두 기록을 참고하여 복기함으로써 교훈을 되새기고자 한다.


한국함대사령부(사령관; 중장 이은수)의 작전명령에 따라 포술장으로 근무하던 백구-58함(함장: 중령 이의근)은 1980년 11월 29일 토요일 1400시에 진해항을 출항하여 남형제도 부근에서 사격훈련을 실시한 후 거제도 도장포 근해에 투묘하였다.

함장 부임 후 첫 출동에서 사관회의를 소집한 함장님으로부터 은밀히 출항한 이유와 부여된 임무를 처음 들었다. 구축함 전북함(DD-96) 및 유도탄고속함 백구-61함(PGM-361)과 함께 외해차단단대(CTE; 11전대사령관)에 배속되어 대마도 서남방 해역에서 작전한다는 것이었다. 같은 해상 대간첩작전에 함께 투입된 구축함 2척을 비롯한 여타 함정들은 내해차단단대에 대부분 배속되어 남해도의 고정간첩 접선 예상지점을 다중 포위하는 임무를 부여 받았다.


다시 출항하여 작전해역으로 이동하기 전까지 몇가지 예상 시나리오를 설정하여 포요원에 대한 교육 훈련을 반복적으로 강도 높게 실시하여 조건반사식 전투 팀워크를 보강했다. 부가하여 사진사를 지정하여 전투배치와 동시에 함교에 배치하여 실제 전투장면을 촬영하도록 지시했다.

12월 1일 2030시에 출항한 후 대마도 서남방 일본 영해 바로 외곽에서 서방으로 기동하고 있던 본함에 2330시 경에 남해대대와 간첩선 간의 교전상황 발생 위급(‘Z’) 전보가 날아왔다. 즉각 총원 전투배치하여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그러나 상황발생 후 약 세 시간이 지난 12월 2일 0230시경까지 간첩선은 오리무중이었다. 작전실패로 판단한 듯 작전참가 전 함정에 분대사령관(CTU: 1전단 사령관)의 전투배치 해제 명령이 하달되었다. 내가 탄 백구-58함에서도 “상황 끝, 전투배치 해제” 방송이 나오고 본인의 임무는 함교 당직사관으로 바뀌었다.


함포 지휘 헤드셋을 목에 걸고 조함 헤드셋을 쓰기 전에 예하 포요원들에게 내 지시가 있을 때까지 현재의 전투배치 대기를 명령했다. 이어서 함장님께 상황발생 현장으로의 전속 ‘압축수색’을 건의했다. 망설임 없이 건의를 수용한 함장님은 바로 북쪽으로 변침하여 전속기동탐색을 시작하면서 단대장님께 건의하여 단대 내의 타 함정들과 동조기동탐색을 실시하였다.


‘압축수색’ 시작 후 한 시간여 정도가 경과한 시간인 0408시에 본함으로부터 340도 7,600야드에서 198도 28놋트로 도주하는 의아선박을 레이더로 접촉한 것을 조타실 레이더 리피터로 확인한 함장님의 급박한 목소리가 해드셋을 울렸다. “함수 전방에 보이는 것 없나?” 음력 10월 25일의 칠흑같은 밤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위협사격 지시를 받자마자 여전히 전투배치 상태에서 대기중이던 포요원들에게 명령하여 즉각적인 위협사격을 실시했다. 30미리 고폭예광(HEIT)탄 20발이 최대 발사율로 발사되어 칠흑같은 밤바다를 뚫고 3400야드 전방의 의아선박으로 예광을 그리며 날아갔다.


곧이어 항해 레이더에서 최초 접촉한 의아선박을 사격통제 레이더(TWS)로 추적중이던 사격통제장(상사)의 다급한 보고가 귓전을 울렸다. “지금 의아선박이 290도 30놋트로 도주중입니다.” 도주하던 의아선박이 조업 중이던 일본 대구리 어선 두척 사이로 금새 들어가 버렸다.


0515시엔 외해차단단대 내의 타 함정들이 현장에 도착하여 본함과 함께 포위망이 형성되었다. 북쪽엔 구축함 전북함, 서남쪽엔 백구-61함, 대마도 방향 동남쪽엔 본함이 배치되었다. 전투배치 상태에서 등화관제중이던 함정들에게 점멸등 점등 지시와 함께 의아선박에 접근하여 확인하라는 무모한 지시가 단대장님으로부터 하달되었다.


의아 선박을 향해 접근 기동 중이던 백구-61함을 향해 의아선박에서 발사한 로켓트탄이 예광을 그리며 날아갔다. 식별된 무장간첩선에 대한 적성이 선포되었다. 전북함이 쏜 수십발의 조명탄이 밤하늘을 밝히면서 아군 함정들을 노출시켰다. 첨단 사격통제체계(H-930 WCS)를 갖춰 조명이 필요 없는 본함의 수없는 조명사격 중지 건의와 점멸등 소등 건의는 묵살되었다.


우여곡절의 시간이 흘러 일출시간이 다가올 무렵에 사통장의 다급한 보고가 들려 왔다. “간첩선이 본함 쪽으로 빠져 나오고 있습니다.” 포축선에 걸리는 일본 어선을 고려하여 간첩선과 역침로인 030도로 변침하여 전속기동하면 바로 격파사격을 실시하겠다고 함장님께 건의했다.


상대속력 60노트, 표적거리 3400야드에서 격파사격 중 이내 재밍에 걸린 30mm 부포를 대체하여 76mm 주포사격을 실시하였다. 고폭(HE)탄 7발이 나가자마자 갑자기 칠흑같은 밤이 대낮처럼 밝아졌다. 명중된 간첩선에서 치솟은 화염이 밤하늘 높이 치솟았다. 포탄의 초속(925m/초)과 표적거리를 감안하면 초탄명중으로 보였다. 일본 영해를 얼마 앞둔 거문도 남동방 43마일 해상에서 최초 상황 발생 후 7시간이 지난 12월 2일 0641시에 무장 간첩선을 기적처럼 격침시킨 것이다.



(발사한 함포 7발 중 초탄에 무장 간첩선이 명중되어 화염이 하늘로 치솟는 장면 . 화면이 흐린 것은 직전에 내리기 시작한 비에 카메라 렌즈가 젖었기 때문)


(무장간첩선 격침 후 함교에 함장과 나란히 서서 격침 현장의 화염을 지켜보고 있는 심동보 당시 백구-58 PGM-358, 유도탄 고속함 포술장)


부유물 인양 및 증거 수집이 남았다. 그런데 같이 작전에 참가한 다른 함정에서 불타고 있는 간첩선에 포탄을 퍼붓기 시작했다. 인근의 구축함과 유도탄고속함의 함포사격으로 간첩선으로의 접근이 불가능했다. 아무리 사격중지를 외쳐도 막무가내였다. 수백 발의 사격이 끝난 후 간첩선에 접근하려니 바다도 충격을 받은 듯 해상상태가 급격히 악화되어 비바람에 백파가 일기 시작했다.


전투배치를 해제하고 부유물 인양요원을 배치하여 격침된 곳으로 접근하여 보니 이미 간첩선은 보이지 않았다. 어지럽게 흩어진 부유물을 닥치는대로 수거하였다. 북한 해도(미조도 근해), 수첩(통신주파수 및 호출부호 기록), 신호탄(1상자), 500원권 지폐 뭉치(비닐 압착), 우의, 선체 조각, 기관실 덮개, 갈가리 찢어져 흩어진 시신 조각 등을 갑판으로 인양하여 모양을 조립해 보니 공작 자선의 형태가 부분적으로 드러났다. 색인표를 부치고 방수 커버를 씌운 후 귀항에 대비했다.


한국함대사령부로부터 전보지시를 받았다. “전북함, 백구-61함은 즉시 귀진하여 입항 환영행사 참석, 백구-58함은 모선 탐색 계속할 것.” 의아했다. 작전과정이 중간에서 왜곡된 게 분명해 보였다. 분개한 함장님이 직접 전보를 기안했다. “간첩선 최초 접촉, 추적 및 격파한 함정 승조원 사기 고려, 즉시 입항 조치 바람.”


뒤늦게 나온 사령부 지시에 따라 진해군항에 입항하니 다음 날 0900시였다. 엉뚱한 함정에 대한 환영행사는 전날 끝났고 항내까지 백파가 일고 있었다. 기다리던 기자들과 조사 요원들이 인양한 간첩선 사진을 찍어 가고 함장님은 작전요도, 항해일지, 통신일지, 전탐일지 및 녹음 테이프, 전투 및 격침 장면 사진 등을 지참하고 한국함대 지휘통제실에서 사령관님께 전투경과 보고를 하였다.


기적같은 야간해상전투의 결과와 특이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무장간첩선(공작 자선) 격침 (공작원 6명 수장)
2. 격침 함정(백구-58함) 피해 전무
3. 상부에서도 포기한 해상작전이 끝까지 깨어 있었던 백구-58함에 의해 기사회생
4. 76mm 초탄명중 (발사탄수 7발)
5. 유도탄고속함(PGM) 최초, 유일의 무공 수훈
6. 상대속력 60kts에서의 비정상 야간전투


그날 저녁 1800시에 한국함대사령관님 주최 전승 축하 리셉션이 해군회관 대연회장에서 열렸다. 함장님과 나만 불려 나가 사령관님이 하사한 축배를 함께 들었다. 12월 17일에는 한국함대 전 지휘관들과 장병들이 참석한 군항 2부두 행사장에서 함장님과 같이 화랑무공훈장을 수상했다. 전북함 포술장과 백구-61함 부장은 먼 훗날 내가 준장으로 재직시 연이어 해군참모총장이 되었다. 전투교훈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오늘 일전이 있다’고 생각하고 만반의 전투준비태세를 항상 갖추어라.
2. 위기 앞에 깨어나 온 몸으로 맞서라. 그래야 결정적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다.
3. 부하들에 대한 최대의 복지는 승리를 선물로 주는 것이다. 임무형 부대 관리로 전투임무에 전념하라.
4. 정직은 장교의 생명이다. 전공(戰功) 가로채기는 해군(害軍)행위다.
5. 전사(戰史)는 군과 국가의 유산이다. 
7.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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