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도발이다. 물 폭탄의 위력과 우리의 대비태세를 알아보기 위한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나아가 핵실험으로 인한 국제사회의 고립을 풀기위한 전략의 일환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 어떤 목적이던 우리 국민의 소중한 인명을 해칠 권리가 그들에게 있을 리 없다. 북한은 책임자를 엄중히 처벌하고 피해를 배상해야 한다. 그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우리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이를 요구해야 하는데, 우왕좌왕하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김대중 정부가 햇볕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하였다. 냉전시대의 대결정책이 탈냉전과 더불어 완화되고, 노태우 정권은 북방정책이라는 이름 아래 화해의 기초를 만든다. 김영삼 정권 시절 획기적 화해를 위해 남북정상회담이 추진되었으나, 김일성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무산되고 북은 고립의 길로 들어선다. 이 때 등장한 김대중 정권이 과감한 화해를 위해 들고 나온 정책이 이른바 햇볕정책이다. 이 햇볕정책은 노무현 정권에서 평화번영정책이라는 이름으로 계승된다. 10년간 우리 국민의 돈으로 뿌린 햇볕이 북한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가. 물론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긍정적인 변화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것은 북한의 핵 보유와 임진강의 물 폭탄이다. 무엇이 문제인지를 깊이 성찰하여 새로운 전략을 만들지 않는다면 더 큰 재앙이 닥칠 것이다. 김대중 정권 시절, 평양을 다녀 온 국회의원 한 분이 전한 말이 귓가에 쟁쟁하다. 그가 만난 북한의 한 고위층 인사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햇볕이라고요? 우리 북에는 아무 소용없습니다. 이곳은 태양이 통치하는 나라 아닙니까.” 그러고 보니 북한은 김일성이라는 태양과 그의 아들 김정일이 통치하는 나라이다. 햇볕이 그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 것 자체가 순진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햇볕을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햇볕을 구사하는 전략에 문제가 있었다는 생각이다. 생명의 변화를 가져오는 햇볕은 대기(大氣) 속의 햇볕이다. 대기가 아닌 우주 공간의 햇볕은 생명의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다. 우주선에 햇볕이 쬐이면 기온이 300도 가까이 올라가고, 밤이 되면 영하 150도 이하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갑고 뜨거운 바람과 함께 비추이는 대기 속의 햇볕은 모든 것을 변화시키고 만다. 적대(敵對)의 벽(壁)을 다시 쌓는다면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나 현실을 외면하고 진공(眞空) 속의 햇볕을 고집한다면 더 어리석은 일이다. 우리는 냉정한 현실주의 입장에서 생명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햇볕을 구사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정책의 이름으로는 처음 등장했던 ‘포용정책(engagement policy)"이 맞다. ’햇볕‘은 일방적이만, 포용은 상호적이다. ‘햇볕정책’을 입안했던 사람들이 북한을 일방적이고 무조건적으로 지원하려는 의도였다면, 이제 이러한 발상은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북한의 변화를 원한다면 냉정한 현실주의로 무장하지 많으면 안 된다. 근거 없이 상대의 선의를 믿고 환상을 쫒는다면, 이는 남과 북 모두에게 고통과 재앙을 가져다 줄 뿐이다. 이제는 ‘햇볕’에서 ‘포용’으로 전략을 진화시킬 때이다. 이인제 의원, 더타임스 소찬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