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의 설화가 있어 옮겨봅니다. 옛날 광해군 시절에 어느 시골 몰락한 선비집에서 차출되어 궁궐에 끌려온 한 처녀가 있었습니다. 궁녀가 된 처녀는 얼굴도 예쁘고 똑똑한데다 착한 심성에다 몸가짐도 매우 정갈하여서 소문이 상궁들의 입에서 입으로 온 궁궐에 번지게 되었습니다. 이 궁녀가 하는 일이야 고작 허드레 일이지만 얼굴도 예쁜데다 똑똑하고 심성도 고운데다 품행이 매우 방정하니 많은 궁녀들 중에서도 단연 돋보였지요 |
그 시절은 무수한 궁녀들이 임금과 하룻밤 운우지정 쌓는 것을 소원이어서 온갖 교태와 웃음을 흘려 하룻밤이라도 임금의 총애를 받을려던 때였지요. 임금은 술 따르는 아릿다운 궁녀 소화를 정(情)있게 보게 되었습니다. "산중에 피는 꽃이 이렇게도 곱고 예쁠까"하고 감탄한 임금은, 그 날 하루 밤을 소화와 보내게 되었습니다. 소화도 나라님을 정성으로 모시고 깊고도 깊은 순정을 그 날 다 바치게 되었습니다. 봄밤에 녹는 향초에 심지 돋구고 주고 받는 말에 임금의 마음이 절로 기쁘니 한밤에 나누는 정이 그저 짧게 느껴지기만 하였습니다. "내 너를 잊지 않고 다시 찾으마" 임금은 소화에게 약조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가을이 찾아왔건만, 소화는 구중궁궐 깊은 처소에 외로운 여인이 되어 임금의 부르심을 기다리는 여인이 되었습니다. 높고 높은 나랏님이야 궁녀와 지낸 하룻 밤 풋사랑이 기억조차 있으리오마는, 여인의 심정은 시퍼런 멍이 되고 병이되어 한 끼 밥술마저 먹는 양이 점점 줄어 들더니 이팔청춘 젊은 몸은 점점 마른가지 등걸 같이 야위어갔습니다. 혹시 임금이 자기 처소에 가까이 왔다가 돌아가지는 않았을까 싶어 빈이 된 소화는 구중궁궐 깊은 처소 담장을 서성이며 기다렸습니다. 발자국 소리라도 나지 않을까....그림자라도 비치지 않을까....담장을 쳐다보며 안타까이 기나긴 기다림의 세월을 흘러보내게 되었습니다. |
더운 여름이 시작되고 온갖 새들이 꽃을 찾아 모여드는 때, 빈의 처소 담장에는 조금이라도 더 멀리 귀 기울이며 밖을 보려고 꽃잎을 넓게 벌린 꽃이 피었으니, 그 꽃이 바로 "능소화"입니다. 덩굴로 크는 아름다운 꽃 능소화는 세월이 흐를수록 더 많이 담장을 휘어감고 밖으로 얼굴을 내미는데, 그 꽃잎의 모습은 구중궁궐 깊은 처소에서 귀를 활짝 열어 놓고 담장 밖을 내다보는 여인의 모습을 빼닮은 듯 합니다. 2010 남아공 월드컵 우르과이전(2:1) 8강 진출은 실패했지만 비오는 날밤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로 마음을 달래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