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옥(金相玉)은 동흥야학교(東興夜學校)를 설립해 계몽교육에 헌신했으며 경북 풍기에서 결성된 대한광복단(大韓光復團)에 참여했다. 1919년 3·1 대한광복운동 직후 본격적으로 대한광복운동에 뛰어들어 윤익중(尹益重), 신화수(申華秀), 정설교(鄭卨敎) 등 동지들과 함께 반일 비밀결사 조직인 혁신단(革新團)을 결성한 뒤 기관지 혁신공보(革新公報)를 발행해 배포했다. 1920년 김상옥(金相玉)은 풍기 시절부터의 동지인 한훈(韓焄),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의 김동순(金東淳)과 함께 요인 암살을 위한 조직을 만들어 구체적인 암살 계획까지 세운 것이 드러나 중국 상하이로 망명했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김구, 이시영, 신익희, 이동휘, 조소앙 등과 만나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하고 임시정부 의연금·독립자금 등을 모금하여 상하이로 전달했다. 김상옥은 1922년 10월 무기와 항일 문서를 휴대하고 안홍한(安弘翰), 오복영(吳福泳) 등과 함께 한성에 잠입한 뒤 1923년 1월 12일 대한광복운동 탄압의 본거지로 악명이 높은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여 다나카 형사부장을 죽였으며, 일본 경찰의 추적을 피해 피신하던 중, 열흘 후인 1월 22일 서울 종로구 효제동에서 일본 경찰의 포위에 맞서 교전 끝에 장렬히 순국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