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실(蔣英實)은 1423년(세종 5) 노비 신분을 벗고 상의원별좌(尙衣院別座)로 임명되었다. 1424년 중국의 체재를 참고하여 물시계를 만들어 그 공으로 행사직(行司直)이 되었다. 1432년 김돈(金墩)·이천(李) 등을 도와 간의대(簡儀臺)의 제작에 착수하고, 각종 천문기기의 제작을 감독했다. 1433년 호군(護軍)에 올랐으며, 같은 해 6월 혼천의(渾天儀)를 완성했다. 이듬해 김빈과 함께 자동시보(自動時報) 물시계인 자격루(自擊漏)를 만들었다. 11세기 송(宋)의 소송(蘇頌)이 제작한 천문시계장치와 아라비아 시계의 자동시보장치에 영향을 받은 이 시계는 시(時)·경(更)·점(點)에 따라서 자동적으로 종·북·징을 쳐서 시보를 알리도록 되어 있었다. 1434년 7월 1일부터 사용된 표준시간은 자격루에 맞추어 운용되었다. 또한 같은 해 금속활자인 경자자(庚子字)의 결함을 보완한 갑인자(甲寅字) 제작을 감독했다. 1437년 천체관측용 기구인 대·소간의(大小簡儀), 공중시계인 앙부일구(仰釜日晷), 휴대용 해시계인 현주일구(懸珠日晷), 태양시(太陽時)와 항성시(恒星時)를 측정하여 주야 겸용 시계로 쓴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 태양의 고도와 출몰을 측정하는 규표(圭表) 등을 완성했다. 다음해 자격루의 일종인 옥루(玉漏)를 제작, 완료하고 경상도 채방별감(埰訪別監)이 되어 동(銅)·철(鐵)의 채광·제련을 지휘, 감독했다. 1441년 강우량 측정기인 측우기(測雨器)와 하천 수위 측정기인 수표(水標) 제작을 감독, 완성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