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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영웅"이라는 뜻을 가진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Ulan Baator)는 300만 몽골인구의 1/3이 이곳에 산다. 울란바타르의 관문이기도 한 칭기스칸 공항은 국제공항으로 불리고는 있지만 규모나 시설은 인천국제공항에 비할 바가 안될 정도로 작은 시골공항 규모였다. 공항에서 30여분 떨어진 근교 프라자호텔로 옮겨간 후 이곳에서 짐을 풀고 첫 밤을 보냈다. 평소 습관대로 일찍 일어났는데 시계를 보니 겨우 5시 밖에 안되었다. 혼자 호텔 바깥으로 나와 인근지역을 도둑고양이마냥 돌아보았다. 6월인데도 초겨울의 한기가 느껴졌다. 아침식사는 호텔에서 준비한 한식부페였는데 맛이 있고 먹을만했다. |
"도대체 이 넓기만 한 이 초원에 누가 어떻게 나무를 심고 어느 천년에 숲을 만든다는거지?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어졌다. 눈앞에 펼쳐지는건 풀....무심하게 풀뜯는 말이나 양떼들....몇몇 유목민과 아이들...영화세트장처럼 듬성듬성 지어진 가옥들.... 멀리 현수막이 몇 장 걸려 있는 것으로 보아 행사장에 다다른 모양이다. 군데군데 말뚝을 박아 경계를 표시해 놓은 조림지가 보였다. 게르(Ger-몽골이동가옥)가 몇 채 보이고 저만치 뚝 떨어진 파란 집이 화장실이란다. 화장실까지 이동하는데 맘을 단단히 먹어야만 했다. 행사장에는 한국사람 몽골사람 구분이 되지 않을 만큼 200여명이 여기저기서 모여들었고 봄여름가을겨울 복장이 한데 뒤엉켜 계절을 착각할 정도다. 현수막에는 ‘사막을 녹색 숲으로! 지구를 푸른 꿈으로! 한-몽그린벨트사업’이라고 씌어 있었다. 사실 이 사업은 몽골정부가 몽골지역의 사막화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한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몽골을 동서로 횡단하는 약 3,700km에 폭 600m로 거대한 푸른 숲, 이른바 그린벨트를 조성한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말대로 된다면 그야말로 중국의 만리장성보다 한수높은 ‘숲의 장성’ 쯤 될 듯했다. |
이날 행사에는 행사단을 이끌고 있는 남성현 산림청 기획조정관, 몽골쪽에서는 정일 주몽골 한국대사와 반자락 자연환경부 전략기획국장 그리고 최준석 한·몽 그린벨트 사업단장이 왔고 한국인, 몽골 현지인 등 200여 명이 함께 참석했다, 행사가 시작되자 남성현 기획조정관은 인사말을 통해 "오늘 한·몽 수교 20주년과 세계 사막화 방지의 날을 기념해 사막화의 위기에 처해 있는 몽골지역에 산림녹화에 성공한 우리나라의 기술과 경험을 전하고 우리의 미래를 위한 작은 희망을 심고자 한다"고 말했다. 반자락 국장은 "오늘 심는 이 나무가 동북아 지역 나라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고 정일 대사는 "몽골은 민주화와 환경을 동시에 이루는 나라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의전행사가 끝난 후 나무심기 행사에 들어갔다. 참가자들은 400여 그루의 포플러 나무를 심기 위해 먼저 나무심는 요령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
이미 식수할 곳마다 적당한 크기로 구덩이를 파 놓았고 성장에 필요한 물을 인공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잠적관수관(고무호스)을 깔아놓은 상태였다. 나는 5그루 정도 가져다가 식수를 했다. 한그루한그루 심을 때마다 깊이도 적당하게 했고 흙도 골고루 뿌려넣고 다지기도 적당히 했다. 다른 일행들과 몽골현지인들도 열심히 한그루씩 식수를 하며 나무가 잘 자라기를 기원했다. 나는 맨처음에 심은 나무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종납나무’로 명명했다. 이 ‘종납나무’가 잘 자라서 언젠가는 몽골의 사막화를 막는 한그루의 아름드리 나무가 되기를 바랬다. 사실이다. 아마존의 열대지역에 한 마리 나비의 날개짓이 텍사스주에 회오리바람을 일으키고 아시아지역에서 허리케인으로 바꾼다는 나비이론이 있다. 반대로 오늘 심는 몽골사막의 작은 이 묘목 한그루가 훗날 한국의 엄청난 황사를 막는 큰 희망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이는 가볍게 간과할 일과성 행사가 아니라 미래의 희망을 심는 뜻깊고 의미있는 행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
이미 우리는 지난날 벌거벗은 민둥산을 푸르디푸른 숲으로 가꿔 산림녹화에 성공한 경험을 가진 민족이 아닌가? 이 경험을 몽골에 전파하기 위해 이곳에서 행사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애국자같은 생각도 들었다. 몽골 대통령도 한국의 산림녹화에 감화를 받아 자국에서도 자연회복을 위한 주요 정책으로 매년 5월과 10월의 둘째 토요일을 공동으로 나무 심는 식목일로 정해 강력한 의지로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오후에는 지난 2007년부터 포플러 등을 성공적으로 조림하고 있는 "한·몽 그린벨트 조림사업 단지 현장"을 둘러보았다. 현재 한-몽그린벨트사업단은 몽골지역에 2개 지역에서 그린벨트사업을 진행되고 있다. 툽 아이막 룬솜지역(이하 룬솜지역)과 우문고비아미막 달란자드가드솜(이하 달란지역)에 약 3,000ha의 방풍림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이를 위해 먼저 몽골사막에 적합한 수종개발을 통한 우량묘목 생산이 필요하다. 룬솜에 20ha 달란에 24ha의 양묘장을 조성해 이곳에서 비술나무, 갈매보리수, 살구나무 등 20여종을 시험생산중에 있는데 다 잘 자라고 있다고 최 단장이 설명했다. |
좌우로 줄을 서서 군락을 이루며 서있는 비술나무가 어른 키보다 더 크게 자라고 있고 이 비술나무는 마치 어느 정원에서 막 옮겨심은 나무처럼 싱싱하고 늠름하게 보였다. 그러나 우리가 보고 있는 이 비술나무 군락지들이 최 단장의 말처럼 땅이 있다고 해서 심으면 나무가 쑥쑥 자라는게 아니라 간단하고 단순하게 이뤄져서 성공한 작업이 아니다. 수종개발과 더불어 척박한 몽골사막에서 다양한 식목들이 생존가능한 토양을 찾는 일이다. 몇 개월이 걸리는 지난한 작업이다. 또 그곳에서 물 공급을 위한 관정을 찾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다. 관정개발에 성공하면 일정기간동안 물을 공급해 주기 위해 점적관수관을 설치하는 일도 몇 개월씩 걸려야만 마칠 수가 있다. 현재 룬솜과 달란조림지는 이같은 과정을 거쳐 성공적인 조림지로 만들어 가고 있다는 설명이다. 정말 대단한 일이다. 이곳에 또 ‘조림기술교육센터’를 설립해 사업관계자와 몽골국민 그리고 정부관계자들을 대상으로 기술이전과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이 또한 반갑기 그지없는 일이다. |
벌써 셋째 날이다. 현지가이드 박정용과장은 테롤지 국립공원으로 이동하는 버스에서 말했다. “어제는 다소 의무적이고 딱딱한 일정이었지만 오늘은 좀 자유스럽고 재미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말 타기를 두고 한 말이었으리라......몽골초원을 달리던 말을 직접 타 볼 수 있다니......박과장은 말을 타기 전에 필요한 안전과 주의사항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의 장황한 설명을 듣고 있자니 갑자기 말타기가 여간 쉽지 않아 보였다. 몇 채의 가옥과, 말과 양떼만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저 초원은 가도가도 끝은 없었다. 가이드는 우리 일행이 너무 심심할 것 같아 주변 산을 가르키며 거북바위니 모자바위니 하며 관심을 유도하기도 했다. 마침 열차 하나를 겨우 발견했다. 하나 둘 세다가 포기했다. 가이드는 70량이라고 말했다. 초원을 가로지르는 이 화물열차가가 유일한 생명체처럼 느껴졌다. S자형 코스에 다다르자 반대쪽 열차가 잠시 멈춰서 있다. 반대편 열차가 어디쯤 오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란다. 이 열차로 중국으로 러시아로 물자를 수송한다고 한다. |
초원 위에 차가 오르자 낙타 몇 마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운이좋게 낙타를 탈 기회를 가졌다. 낙타는 겨우 50m정도 왕복하며 타각타각 걷더니 이내 무릎을 꿇었다. 2달러가 너무 부족했는가 보다.... 이번에는 말타는 곳으로 이동했다. 20여마리 말들이 출마(出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생각한 말보다는 조금 작았지만 저 말의 선조들은 평원을 거침없이 달리던 말이었다. 한명씩 말을 탔다. 여자아이, 꼬맹이들이 마부노릇을 하며 말을 다루는데 내게는 마부도 없었다. 고삐를 쥐고 좌우로 흔들어 보고 말 허리를 발뒷굼치로 톡톡 차 보기도 했다. 말이 슬그머니 움직이기 시작했다. 30-40분간을 말위에서 보냈다. 한 용감한 사내는 경주마처럼 말을 타기 시작했고 다른 사내는 말이 도대체 말을 안듣는다며 애궂은 말을 나무라기만 했다. 뒤에서 혼자 실실 웃었다. |
오후에는 자이산 전쟁기념탑에 올랐고 아래로 펼쳐진 시내를 둘러보았다. 도시는 여느 도시와 다를 바 없다. 산 아래 한국인 이태준 의사가 잠든 묘소가 있다. 몽골 최초 한인의사였고 독립운동을 위해 불운하게 목숨을 잃은 한국인이었다. 우리 일행은 함께 묵념을 했다. 민속관에서 몽골전통공연을 관람했다. 우리나라의 해금이나 중국의 얼후(二胡)와 비슷한 소리는 내는 몽골첼로가 몽골인의 감성을 대변해 주는 듯 유장한 소리로 가슴속으로 스며드는 음악이 애잔하게 느껴졌다. 음악은 언어나 문화가 달라도 하나로 이어질 수 잇는 공통언어였다. 이들의 공연 하나하나가 끝날때마다 아낌없이 박수를 쳤다. 저녁에는 월드컵 한국-그리스전을 관전하기 위해 TV에 시선을 집중했다. 전반 7분과 후반 7분에 한골씩 넣어 2-0으로 이겼다. 호텔내에서 다한 목소리로 대~한민국을 외쳤다. 저녁내내 신났다. 그렇게 일정은 끝났다. 칭기스칸 국제공항에서 몽골과 가진 작은 인연을 마무리해야 했다. 그러나 이것은 몽골과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리라.....짦은 4일간 몽골에서 가진 즐거웠고 의미있었던 추억을 고스란히 안고 인천행 대한항공은 하늘을 향해 높이 이륙했다. <이종납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