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지도를 보면 유럽 西 北部에 마치 해삼과 같이 생긴 스칸디나비아 반도가 위치하고 있다. 신문의 여행광고 난에는 여기에 위치하고 있는 네 나라를 마치 한 나라와 같이 핀. 스. 노. 덴. 이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이들 나라 즉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는 공통점이 많아 통합명칭으로 이렇게 불러도 무방하리라는 생각도 든다. 국민소득 3만불 전.후의 부유국, 세계의 대표적인 복지국가 山林과 섬 호수의 나라, 바이킹(viking)의 후예라는 공통점과 피오르드 해안, 빙하, 백야(白夜)현상, 노벨상 등은 우리에게 많은 동경과 호기심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핀.스.노.덴의 옆에는 음흉의 대명사인 북극 곰, 우리에게 민족상잔의 6.25 전쟁을 일으키게 한 배후의 나라인 러시아가 자리 잡고 있어 흥미를 더해 주고 있다. 旅行은 분명히 費用이 많이 들지만 비용 이상으로 우리생활에 生氣를 불러주는 活力素이다. 그런데 약간 찜한 생각도 금할 수 없다. 나라 사정이 어려워 언제 또외환 위기가 닥쳐오지 않을까 걱정들 하고 있는데, 30여년 공직생활을 한 우리 內外가 이렇게 外貨를 써도 되는가 하는 자책감이 앞서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렇게 노후에나마 여행을 통해 生活의 活氣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 누구의 德分인가를 잠시 돌이켜 보면 양해를 구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은 분명히 오늘의 指導者와 젊은 世代가 아닌 오늘의 우리나라를 世界 10位 권의 經濟大國으로 成長할 수 있도록 民族中興의 기틀을 마련해 준 70 年代 前後의 國家 指導者와 결코 우리 자손에게는 이러한 찌든 가난의 유산을 남겨주어서는 안 된다는 一念으로, 온갖 고통과 가족과의 생이별을 무릅쓰고 서독으로 떠난 광부와 간호사, 열사의 나라 中東에 뛰어든 技術者, 그리고 월남의 자유 수호를 위해 목숨마저 내어 던진 參戰勇士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祖國近代化에 발목이나 잡고 감옥이나 드나들던 사람들이 이제는 버젓이 大韓民國 정치권 要所要所에 잠입 하여 民族의 쓰라린 過去와 國家安保는 돌다리도 두드려 가야한다는 歷史的 敎訓을 망각하고, 국가를 어지럽게 국민을 不安하게 이끌고 가고 있어 우리의 여생마저 위협받고 있는 현실이다. |
대통령도, 육영수여사도, 광부와 간호사도 그리고 서독인 광부들마저도 울었다. 울고 또 울었던 그 눈물, 그것은 헐벗고 배고픈 가난한 나라 사람들의 복받친 서러움의 눈물이었다. 대통령의 外交的 해외 순방마저도 외화사용이 부담이 되어 우리국민들이 밥술깨나 들게 될 때까지는 外國에 나가지 않겠다던 그분이다. 그리고 후손들을 위해 터전이라도 닦아 놓자고 하시던 말씀을 10년 만에 이룩하셨다. 예비역 장성출신인 김유복씨는 ‘젊은이들이여! 이글을 읽어 보렴’ 이라고 시작한 기사에서 ‘우리 대한민국을 짊어질 개혁 주체인 젊은이들은 우리 60, 70 대가 겪은 아픔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 그대들은 조국을 위하여 과연 얼마만큼 땀과 눈물을 흘렸는가 ? 라는 질문도 남겼다. 요즈음 사회일각에서 휼륭한 지도자에 대해 치적인정은 고사하고 오히려 흠집만 내려고 하는 자들, 그리고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이 흘린 피와 땀이 있었기에 오늘의 젊은 世代들이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배은망덕 한 자들에게 이 글에 담긴 깊은 意味가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그러면 조국에 대한 感謝와 未來의 조국에 대한 우려의 마음은 잠시 접어두고 본 旅行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나는 이 기행문에서 어디에 가서 무엇을 보고 왔다는 사실보다 여행 중에 있었던 웃지 않을 수 없었던 촌극(寸劇)과 앞으로의 旅行者들을 위한 참고가 될 만한 몇 가지 事件을 기억 속에 담아 보는데 주력해 보았다. |
우리 여행은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모스코바를 경유 텐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핀랜드를 거치 다시 러시아의 성 페데스부르그와 모스크바를 관광하는 12일 간의 일정이었다. 계절적으로 초여름은 북 구라파 여행의 최적기이며 가격조건도 좋아서인지 일개 여행팀으로서는 적정인원을 훨씬 넘은 34명이나 되어 통제 상에도 애로가 예상되었으나 大部分이 공직자, 교사출신이며, 나이도 개략 60 전.후 여서 스스로 교양과 질서를 지켜주었다. 비행기는 재급유와 덴마크에서의 여행시간에 맞추기 위해 모스코 공항을 경유했는데 입국심사에 무려 두 시간이 걸렸다. 잠시 앉아 대기할 의자조차 없는 곳에서 환갑을 넘긴 나이에 무려 두 시간을 서서 기다려야만 했으니 악몽의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러시아를 흔히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나라” 라고 하더니 이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가이드에게 急행료를 바라는 것이 아니냐고 귀뜸을 했더니 맞는 말씀인데 이 친구들에게 나쁜 버릇 길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옳은 말이다. 손님은 봉이 되더라도 가이드는 느긋이 잘 참고 있으니 러시아에는 이제 만성이 된듯하다. 그런데 이러한 지루함은 다음 날 덴마크 코펜하겐 空港에서도 비슷한 현상이었다. 러시아는 그러려니 했지만 코펜하겐에서 마저 이러하니 이제까지 좋은 감정 간직했던 덴마크에 대한 인상마저도 찌부러졌다. 오전 9시면 정상과업 시간임에도 입국심사대에는 돋보기를 낀 할망구가 혼자 않아 안경을 위.아래로 굴려가며 꾸물거리고 있다. 답답하고 바빠 보이는 正服입은 러시아 兵士 하나가 새치기를 하려다가 들겼다. 바쁜 북새통에 이 할망구가 軍紀까지 잡고 있으니 웃음마저 나왔다. 다행이도 한 시간 정도 지나니까 한 사람이 더 나와 거들어 주어 겨우 정체가 풀렸다. 빨리빨리 라는 별명의 한국 百姓으로서는 참으로 견디기 어려웠던 순간이며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첫 旅行地인 덴마크는 면적이 한반도의 1/5 인구는 530만의 작은 국가이며 인구의 약 1/4이 수도 코펜하겐에 거주한다. GNP 3만불이 넘는 낙농업의 모델 국가로 과거 60년대 젖소 한 마리 없던 우리나라에는 동경과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나는 번거로운 도시와 고적답사보다 시골풍경과 낙농업의 현장이 더 보고 싶었는데 단 하루의 코펜하겐 일정은 너무도 빡빡하고 아쉬움이 많았다. |
관광객에게 소지품 단속을 잘하라는 유머로 요즈음 남미등지에서 쓰리꾼(소매치기)이 많이 와 있다는 말을 시레기꾼 이라는 표현으로 한번 웃겼고, 또 한번은 王宮 옥상에 게양된 기를 가리키며 저 태극기가 바로 현재 왕이 왕궁에서 집무를 하고 있는 표시라고 해서 두 번 웃겼다. 오랫동안 한국말에 적응되지 않아서인지 늘씬한 키에 미모도 갖춘 가이드의 진땀 흘리는 모습은 매우 애처로워 보이기만 했다. 저녁식사는 비경이라는 한국 식당에서 했는데 음식도 좋았고, 식당주인과 종업원들의 친절한 봉사가 어리둥절했던 하루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주는 듯 했다. 식사 후 우리는 서둘러 노르웨이로 향하는 승객 2,0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호화유람선 Seaways 에 승선했다. 유람선 Seaways는 저녁노을이 질 무렵 500여개 섬으로 구성된 코펜하겐의 섬과 섬 사이 좁은 水路를 빠져 나오면서 대 자연의 全景을 선보였고, 더욱이 저녁노을에 반사되는 모습은 실로 가관이었다. 白夜현상의 영향으로 밤 12시가 되어서야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고, 잠시 후 시간상으로는 오전 2시인데 낮이 시작되었다. 참으로 신기한 현상이었다. 배에서 멀리 오슬로 港口를 내다보며 아침식사를 마치고 9시 경 오슬로에 상륙하니 하루 만에 또 나라가 나뀌었다. (다음주엔 노르웨이편을 기대해 주십시요) 필자 박형건 회장 주요 프로필 ▲해군사관학교(18기) ▲미 해병대 유학 ▲월남전 참전 ▲해병대 제 1사단 7연대장 ▲합참 작전국 훈련과장 ▲해병 대령 예편 ▲포항종합제철(주) 예비군여단장 ▲대일기업(포항제철협력사) 고문 ▲ 현 경기도 재향군인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