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서(金宗瑞)는 국토 확장에 뜻을 두고 있던 세종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1433년 12월 함길도도관찰사, 1435년 함길도병마도절제사가 되어 7, 8년간 북쪽 변방에서 여진족을 무찌르고 비변책(備邊策)을 올리는 등 6진(六鎭:종성·회령·경원·경흥·온성·부령)을 개척하여 국토확장에 큰 공을 세웠다…
이종무(李從茂)는 말타기와 활쏘기에 능하였다. 1381년 강원도로 쳐들어온 왜군을 물리친 공으로 정용호군(精勇護軍)이 되었다. 1392년 조선이 건국되었고, 1397년 옹진에서 만호(萬戶)의 벼슬에 재직중 왜군이 다시 쳐들어와 성을 포위하자, 끝까지 싸워 적을 물리친 공으로 첨절제사(僉節制使)가 되었다…
최윤덕(崔閏德)은 1419년(세종1년) 조선의 유화정책에도 불구하고 왜구의 침탈이 계속되자 5월 14일에 조정에서 대마도의 정벌을 논의하게 되었다. 그해 음력 6월 19일 장천군 이종무를 3군도체찰사로 삼고, 영의정 유정현을 3도도통사로 하고, 참찬 최윤덕을 3군도절제사로 삼도에 소속된 9명의 절제사들…
정철(鄭澈)은 1561년(명종 16년) 진사시에 장원급제하였고, 이듬해 별시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지평(持平)을 거쳐 함경도 암행어사를 지낸 뒤 1567년(명종 32년) 이이와 함께 사가독서를 하였다.1568년(선조 1년) 수찬(修撰)·교리(校理)를 거쳐 다시 지평이 되었다. 1578년 장악원정으로 기용되고, 사간…
류성룡(柳成龍)은 이황의 문하로 들어가 학문을 닦았으며 1564년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여 1566년 별시 문과를 거쳐 한원(翰苑)에 들어갔다가 승문원 권지부정자가 되었다. 이듬해 예문관 검열과 춘추관 기사관을 겸하였고, 1569년(선조 2)에는 성절사의 서장관이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조 정랑이…
이항복(李恒福)은 1580년(선조 13년) 문과에 급제하여 1581년 검열(檢閱)이 되었다. 과거 급제 이듬해에는 한림학사가 되고 1583년에는 이이의 추천으로 친구인 이덕형과 함께 호당에 들어가 사가독서를 했다. 또 홍문관인 옥당의 벼슬아치로 천거받았다.호조참의가 되어 전곡(錢穀)의 출납에 밝았으므로…
이덕형(李德馨)은 1580년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율곡 이이의 추천으로 호당(湖堂)에 들어가 사가독서를 한 뒤 옥당인 홍문관의 직책에 배치되어 벼슬길에 오르게 된다. 박사(博士)가 되고 수찬(修撰)과 교리(校理),이조정랑 등을 역임하고 1590년 당상관에 올라 동부승지, 대사간, 부제학, 대사성, 이조참의…
하륜(河崙)은 1396년 예문춘추관학사로 임명되었는데 명나라와의 표전시비(表箋是非)로 정도전과 정면으로 대립했다. 조선에서 명에 보낸 외교문서에 명나라를 모욕하는 언사가 있다고 하여 문서 작성자인 정도전을 압송하라는 명나라측의 강경한 요구에 하륜은 정도전을 보낼 것을 주장했으며 1396년 계…
배극렴(裵克廉)은 1376년 진주도원수로서 진주에 침략한 왜적을 반성현(班城縣)에서 물리쳤고, 이듬해 경상도도순문사로서 왜구를 물리치면서 합포에 성을 쌓았으며, 1378년에는 경상도원수가 되어 왜구를 대파했다. 이듬해 왜적의 기병 700명과 보병 2,000여 명이 진주에 침략했는데, 양백연(梁伯淵)·…
조준(趙浚)은 1388년 위화도회군으로 권력을 장악한 이성계(李成桂)에게 중용되어 지밀직사사 겸 대사헌에 올랐다. 1390년 전제개혁을 단행하여 구세력의 경제적 기반을 붕괴시키고 조선왕조 개창의 토대를 마련했다. 1392년 7월 이성계를 추대하여 조선 개국 후 개국공신 1등으로 평양백(平壤伯)에 봉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