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여러 차례 독도 망언과 함께 크고 작은 지진이 발생하고 있어 천재지변을 통해 천심이 경고하고 있다. 지난 2005년 3월 일본은 경비행기로 독도상공 진입을 시도하는가 하면 10일에는 시네마현 의회 상임위 총무위원회에서는 다케시마의 날 조례를 본회에 상정 했고, 16일에는 다카노도시유키 주한일본 대사가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망언을 했다. 이에 대한 신천지 예수교 5만여명의 성도는 3월 20일 서울 올림픽 평화의 광장에 모여 독도망언 규탄 대회를 가졌고 같은 시각 오전 11시 20분쯤 후쿠오카 지방에서 진도 6의 강진이 발생했다. 또 2011년 3월 일본 문부과학성에서는 일본 교과서에 독도를 일본땅으로 표기했다. 이후 3월 11일 일본 센다이시 남동쪽 해저에서 진도 8.8의 강진이 발생했다. 일본이 독도와 관련해 영유권을 주장할 때마다 대규모 지진 등 천재지변 일어 독도관련 지진의 관계성을 살펴봐야 할 때다. 지난 8월 10일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방문을 문제 삼아 일본이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한 것과 관련해 세계적인 비난 여론이 일고 있다. 특히 중국 동남아 등지에서 반일 감정이 크게 일고 있고 국내에서 반일 감정 또한 커지고 있다
박근혜는 오늘부터 공식적으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의 지위를 갖게 된다. 국무총리급의 예우를 받게 되고 경찰청의 공식 경호도 받게 된다. 새누리당의 모든 최고 의사결정은 박근혜 후보로 통하게 된다. 집권 여당의 최고 정점에 박근혜 후보가 방점을 찍은 것이다. 지난 4월, 4.11 총선을 앞두고 충청남도의 소도시인 보령시에 박근혜 후보가 지원 유세차 방문했다. 수많은 인파가 박근혜 후보의 얼굴을 보기 위해, 또한 육성 연설을 듣기 위해 몰려들었다. 보령시가 생긴 이래 최대 인파가 몰렸다고 언론들은 그 당시 모습을 전했다.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바꾼 뒤라 한나라당에 익숙해 있었던 장년층에게 새누리당은 매우 어색한 이름이었고 생소하게 들리는 이름이었다. “오늘 보령에 누가 온다고?, 무슨 당이라고?, 새누리당은 또 뭐냐.? 우리는 그런 것 모른다. 박근혜 당이냐 아니냐 , 우리는 그것만 알면 된다”, 지난 4.11 총선을 맞이한 충청도의 민심은 그렇게 변해 가고 있었고 박근혜당(?)은 결국 충청권에서 승리를 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대선을 앞둔 일차 접전지역에서 박근혜 후보가 중원을 차지했던 것이다.어제 열린 새누리당 후보자 결정 전당대회에서 압도적인 지
새누리당의 18대 대선 후보 경선은 84%라는 전무후무한 득표 박근혜 후보의 승리로 끝이 났다. 지지율 10% 내외 혹은 1~2% 대의 후보들이 전국을 돌며 야단법석을 떨고 있는 야당의 경선에 비해 흥행 면에서는 재미없는 경선이었지만 그 동안 박 후보의 후보가 확정되기까지의 과정이나 경선에 참가했던 경쟁자들의 면면을 살펴 볼 때 박 후보의 대선 후보 확정은 당연한 귀결이다. 박근혜 대선 후보 확정은 이미 5년 전부터의 국민 바람이었고 차기 대통령으로 박근혜 후보가 선출되어야 한다는 공감대도 형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국민이 아직까지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전대미문의 괴상한 경선 룰과 지금까지도 민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고 믿고 있는 여론조사기관의 조작 등이 어우러져 도덕적으로 부실하고 능력 면에서 의심을 받는 이명박이 경선에서 이기는 바람에 지연되었을 뿐, 대세는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박근혜 후보의 압도적 경선 승리에는 경쟁자들도 한 몫을 했다. 애초에 박근혜 후보와 대권 후보 자리를 다투던 경쟁자는 3명으로 압축되었으나 정몽준과 이재오는 일찌감치 밀려오는 대세를 견디지 못하고 완전국민경선제 도입 실패를 이유로 경선불참을 선언했고 차 차기를 노리고 남은 김
5년 전 오늘, 국민은 협잡, 조작에 의한 너무도 기대와는 다른 결과에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국민의 염원은 전 정권의 친북정책을 지향하고 부정부패를 일소할 역량과 자격을 가진 단 한 사람의 후보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승리였지만 노무현 정권과 결탁한데다 친형 이상득과 이재오를 앞세워 매관매직으로 의원 당원들을 줄 세우고 언론과 여론조사 기관까지 장악한 6인방의 협잡과 조작은 너무도 치밀했고 방조하던 공권력의 힘 또한 너무도 강했다. 반면, 법과 상식의 세상을 염원하는 보통사람들의 힘은 보잘 것 없어 결국 국민은 박근혜 후보에게 한 표를 던질 기회조차 박탈당하고 통곡하는 수밖에 없었다.너무도 기막힌 결과에 국민이 뜨거운 눈물을 흘리던 그 순간에 희대의 협잡꾼들은 환호작약했다. 그들은 그 더럽고 교활한 머리를 굴려 박근혜 후보와 국민을 유리시키는 일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조국을 부패의 왕국으로 만들어 대대손손 영화를 누릴 꿈에 젖어 있었다. 이상득은 매관매직 그리고 공천을 무기로 당내 의원, 당원 포섭 작업을 감행했고 이재오는 친박 의원들을 협박해가며 당헌당규 개정을 요구, 관철을 위해서는 몽니 부리기도 서슴지 않았다. 이명박의 과거를 거론하거나 정책을 비난
지난주 금요일 우연한 기회에 지금은 정계를 떠났지만, 한 때는 야당 출신이면서 장관을 지낸 정치인을 만나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그는 민주당의 간판을 달고 3선 의원을 지냈고 최장수 정책위의장을 지냈으며 자타가 인정하는 경제통에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는 경제부처 장관을 지낸 인사였다. 그분이 정계를 떠난 이유는 김대중 정권이 끝나고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자 이념 등 여러 가지 정책들이 자신의 이상과 가치에 맞지 않아 스스로 정계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는 소회를 밝혔다. 그 분은 비록 한때는 민주당 소속이었지만, 그가 정치하는 동안에는 대단히 합리적인 정치를 했고 신사적인 매너를 지니고 있었기에 운동권 출신들이 득세한 노무현 정권과는 거리감이 생길 수밖에 없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분은 비록 정계를 은퇴했지만 다시는 정치를 재개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는 점을 밝히면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기 시작했다. 먼저 차기 대권 구도와 관련하여 야당 주자들의 얘기부터 끄집어냈다. 자신이 민주당 출신이라 민주당 국회의원들을 개인적으로 만나서 누구를 지지할 거냐고 물으면 민주당 의원들마저도 속으로는 박근혜를 뛰어넘을 만한 능력을 지닌 후보가 민주당에는 없다고 솔직
희빈 작주라는 말은 수도 없이 연속극의 소재로 쓰인 조선 19대 숙종 때 희빈 장옥정이 중전을 해치기 위해 저지른 저주의 굿 등 사악한 짓을 통틀어 지칭하는 옛말이다. 장희빈은 멀쩡히 살아있는 중전을 죽이고 그 자리를 차지하고 싶은 욕망에 중전의 사주를 적어 인형에 넣고 봉한 다음 바늘을 꿰거나 무덤을 파서 가져온 뼈 조각을 몰래 중전의 베게 속에 넣기도 했다. 급기야는 중전의 초상화를 구해다 벽에 걸어놓고 화살을 쏘다가 임금에게 현장을 들켜 독살스러운 평생을 마쳤으나 장희빈이 중전을 상대로 저지른 모질고 극악한 행위는 희빈 작주라는 말로 남게 되었다. 요즘 37년 전에 타계한 장준하 사상계 사장의 두개골에 함몰된 흔적을 발견했다고 그의 죽음을 타살로 몰아가며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에게 책임을 지라고 악을 쓰는 민주통합당의 작태가 딱 중전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온갖 요사를 다 떨던 장희빈의 고사와 너무도 닮았다. 37년이나 땅속에 묻혔던 두개골에서 함몰된 자국을 찾았다고 방정을 떨며 박근혜 후보 사퇴를 주장하는 꼬락서니는 장희빈이 오라비 장희재를 시켜 무덤에서 파낸 뼈다귀를 중전의 베게 속에 집어넣은 행위나 중전의 초상화를 걸어놓고 활을 쏜 행위와 한 치
2030세대에게 안철수에 대해 물으면 소통과 공감을 잘 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20대의 젊은 대학생들을 상대로 청춘스케치라는 이벤트를 열어 인기를 얻었고 그들과의 대화는 많이 했는지는 몰라도 어렵게 살아가는 진짜 서민들과 대화를 나누었다는 사실은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젊은 세대들은 마치 환영이나 신기루에 홀린 듯 소통의 우상으로 여기고 있다. 그토록 소통을 강조하고 공감을 강조하는 안철수 식 소통법을 보면 참으로 희한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최근 들어서는 안철수의 과거 행적에 대한 좋지 못한 사례들이 언론을 통해 속속 등장하고 있는 중이다. 벌써 일곱 개 정도의 의혹이 나왔다. 가장 먼저 터져 나온 것이 브이소사이어티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그중에서도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분식회계 사건에 대해 구명운동을 하면서 탄원서에 서명한 것이 시발점이 되었다. 이 문제가 언론에 크게 보도되자 해명인지 변명인지 모르지만 안철수 자신이 직접 나서지 않고 측근인 금태섭 변호사가 나섰다. “ 최태원 회장의 구명운동은 잘못된 것이라면서도 40명의 브이소사이어티 회원 전원이 서명한 것이고 그중 한명일 뿐인데 다른 근거 없이 두 사람이 무슨 동
대기업 총수들 이번 모기업 법정구속 사태 타산지석으로 교훈삼아야글로벌시대 사회와 시장과 사회적 변화 감지해야양형기준, 지난 2009년 만들어 법원이 양형기준 즉 형량을 정하는 일종의 기준이 엄격하게 적용된 것이다. 대기업들과 기업의 오너들은 자신의 특출 난 재주보다 정부와 국민들의 사랑으로 오늘의 기업을 만들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대기업 오너이면 무엇이든지 다한다는 잘못된 사고와 사회적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고 보며, 죄지었다면 반성하고 깊이 참회하는 모습보여야 한다.이번 모기업의 재벌총수 법정구속의 사태는 자신의 오만과 독선에서 비롯되었고 자신의 잘못된 일로 재판을 받는 것에 반성과 참회가 없기에 담당재판부는 독립된 법원으로서 내린 신중한 결정이라고 본다. 법정구속을 당한 모기업 총수는 악재라고 할지 몰라도 사회적으로는 호재라고 본다.원래 법정구속(法定拘束)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던 피고인을 재판부가 직권으로 실형선고와 함께 재판부가 직권으로 법정에서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던 피고인을 실형선고와 함께 재판부가 직권으로 법정에서 구속·수감하는 제도로 피고인구속에 포함되며,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염려가 있거나 주거가 일정치 않은 범죄의
출간 당일부터 진실과 다른 내용 때문에 곤경에 처했던 안철수 원장, 그의 거짓말은 이제는 독이 되어 안철수 지지자들까지 넌더리를 치게 만들고 그의 영입에 목을 매던 민주당까지 뒷걸음질 치게 만든다. 흔히들 말하기를 남을 완벽하게 속이려면 자기 자신부터 속여야 한다고 말하지만 자신의 저서가 독이 되어 돌아오는데도 태연한 것을 보니 이미 거짓말에 관한 한 달인의 경지에 선 안철수고 그의 저서 자체도 의구심의 대상이 됐다. 구술했다는 발내용 자체가 모두 생거짓말이었거나 아니면 자신이 무슨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조차 의식하지 못하고 구술했던 게 아닌지 의심이 든다. 안철수는 자신의 저서에서 “안 연구소에는 나의 친척이 한명도 없다” 고 말했지만 오늘 자 문화일보는 안철수와 부인과 장인이 설립 초창기에 6년간 이사로 재직했고 친동생도 4년 간 감사로 등록되어 있었다고 밝혔다. 안철수가 안 연구소에 나의 친척이 한명도 없다고 강조한 것은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는 또 다른 저서 ‘CEO 안철수’ 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라는 제하의 저서에서도 같은 말을 강조하며 그것은 나의 의도적인 실천이었다는 말까지 했었다고 한다. 같은 거짓말을 한 번도 아니고 몇 번씩 강
8월16일자 조선일보 단독 보도에 따르면 2011년 5월과 6월에 걸쳐 안철수가 보유하고 있는 ‘브이소사이어티’의 지분을 처분한 것으로 보도했다. 이 보도에 따르면 유용석 한국정보공학 대표의 발언이 나온다. 유 대표는 “그 당시 정치권에서는 안 원장에 대한 얘기가 나올 때였다”면서 “안원장이 ‘브이소사이어티’ 자체를 부담스러워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유용석 대표는 안철수가 ‘브이소사이어티’의 지분 포기의사를 밝혔을 때 “그런다고 경력이 지워지는 것이 아니니 잘 생각하라”는 조언까지 했다고 밝혔다. 유용석 대표의 발언은 백번 맞는 말이다. 자신이 입고 있던 옷에 얼룩이 묻으면 세탁소에 가서 드라이 크리닝을 하면 얼룩은 말끔하게 빠진다. 하지만 사람은 세탁물이 아니다. 사람의 이력서에 붙어있는 경력은 자신의 의복에 묻은 얼룩이 아니라서 아무리 지운다고 해도 죽을 때 까지 지워지지도 않을 뿐더러 죽은 후에도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법이다. 인터넷 포탈에서 안철수를 검색하면 안철수의 주요 경력이 나온다. 안철수를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군더더기 없이 살아온 참으로 흠결 없는 경력의 소유자로 보인다. 그러나 지난 봄에 있었던 일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면 얘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