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덕순(禹德淳)은 1905년 겨울 연해주로 건너가 북간도관리사(北間島管理使)를 지낸 이범윤(李範允) 등 독립운동 지도자들과도 연락을 취하여 의병을 조직, 항일전을 준비하였다.1908년 여름 의병대 참모총장 안중근과 함께 두만강을 건너 함경도 경흥과 회령 지방 등지의 일본 군영을 습격하여 왜병을 사살하고 무기를 노획하는 등의 전과를 올리기도 하였다. 1909년 봄 다시 러시아로 건너가 연추(煙秋)에서 안중근·김기열(金基烈) 등과 함께 단지동맹(斷指同盟)을 결성하여 함께 결사보국을 맹세하였다. 담배 행상 등을 하며 자금을 모았고, 연해주를 돌아다니며 동지들 간의 연락을 취하였다. 1909년 10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안중근을 만나 이토 히로부미 처단계획을 듣고 함께 거사할 것을 약속하였고 유동하·조도선도 동행하여 간도 하얼빈으로 가서 이토 히로부미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이토 히로부미의 처단을 확실히 하기 위하여 안중근, 유동하, 조도선 등과 같이 하얼빈 일대를 각자 영역을 정해서 담당구역에 나타나는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안중근의 담당구역은 하얼빈 역, 우덕순의 담당구역은 채가구(蔡家溝)역이었으므로 각자의 구역에서 거사를 준비하였다. 10
송시열(宋時烈)은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인조를 따라 남한산성에 들어갔으나, 1637년 화의가 성립되어 왕이 항복하고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청나라에 인질로 잡혀가게 되자 낙향하여 10여 년 간을 초야에 묻혀 학문에 몰두했다. 1649년 효종이 왕위에 올라 척화파와 산림(山林)들을 대거 기용하면서 장령에 등용되어 세자시강원 진선을 거쳐 집의가 되었다. 존주대의(尊周大義)와 복수설치(復讐雪恥)를 역설하는 글을 왕에게 올려 효종의 신임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청서파(淸西派 )였던 그는 공서파(功西派 )인 김자점(金自點)이 영의정에 임명되자 사직했다. 이듬해 김자점이 파직된 뒤 진선에 재임명되었다가, 김자점이 청의 연호를 쓰지 않은 장릉지문(長陵誌文)을 빌미로 조선의 북벌 움직임을 청에 밀고하여 효종이 청에게 추궁을 당하자 영의정 이경석 등과 함께 다시 물러났다. 그뒤 충주목사·사헌부집의·동부승지 등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양하고 향리에 은거하면서 후진양성에만 전념했다. 1658년(효종 9) 다시 관직에 복귀하여 찬선을 거쳐 이조판서에 올라 효종과 함께 북벌계획을 추진했다. 이듬해 효종이 급서한 후 자의대비(慈懿大妃)의 복상(服喪) 문제를 둘러싸고 1차 예송(
[ 더타임스 마태식 기자 ] 낙하산공천 반대, 돌려막기 공천 반대, 부도덕·불공정 공천을 반대하며 무소속으로 출마한 대구지역 국회의원 후보자들이 결성한 무소속연대가 26일 오전 10시 문화웨딩 그랜드홀(6층)에서 예비모임을 갖는다.예비모임은 중·남구 배영식 후보, 동갑 오태동 후보, 서구 서중현 후보, 북갑 이명규 후보, 북을 김충환 후보, 달서갑 도이환 후보, 달서을 서영득 후보, 달성 구성재 후보가 참석할 예정이다.예비모임에서는 무소속 연대 공식명칭 논의를 비롯해 공통공약 및 정책협의, 지도체제 정비, 공동 선거운동 방향 등을 논의하고 실무위원회를 구성 할 예정이다.무소속연대는 보도자료를 통해 “대구 경북 지역의 여론을 무시한 잘못된 공천과 지역의 이익을 대변할 제대로 된 창구가 없음을 반성하며 금번 총선에서 우리 지역을 위한 무소속연대를 발족하기로 했다.”고 취지를 밝히며 “꿈과 희망을 잃은 우리 지역 젊은이와 숨 쉴 능력조차 상실한 지역경제의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 지역민의 염원을 제대로 반영한 공약을 개발하고 단합된 행동으로 지역의 이익과 발전을 위해 일하겠다.”고 하며 지역민의 관심과 지지를 호소했다.
제7대 군산대 공무원 직장협의회 출범식이 23일 군산대 황룡문화관 1층 황룡문화홀에서 열렸다. 출범식은 정기총회와 공직협 봉사단인 “우리애(愛) 봉사단”발족식 등으로 진행됐다. “우리애(愛) 봉사단”은 향후 복지시설과 보육원 방문, 나눔봉사와 재난구호 활동, 농어촌 일손돕기 등 정기적인 활동을 통해 아름다운 사회조성에 기여하고 지역사회와의 소통을 강화해 ‘울타리 없는 대학’이라는 친근한 이미지 향상을 위해 노력할 계획이다. 채정룡 총장은 축사를 통해 “대학발전을 위해서는 구성원의 단합과 애교심 그리고 군산대학이 중요한 터닝 포인트에 접어든 올해 조합원 모두가 학교를 내 집처럼 아끼는 마음이 필요하다”며 “대학 역시 조합원들의 쾌적한 근무 환경 조성을 위해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조남수 회장은 출범사를 통해 “새로운 시대적 상황이 새로운 과제를 주고 있다. 변할 것을 요구한다. 공직협이 단순히 조합원의 복지증진 뿐만 아니라 대학발전의 한 축을 담당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나아가 지역사회 발전에도 기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신임 회장으로서 기꺼이 그 요구에 부응하겠다고 밝혔다.2000년 4월에 창립된 군산대 공무원 직장협의회에는 현재 160여명의 회원
군산시가 지력증진을 위해 볏짚을 논에 환원하는 사업을 추진한다.시는 이를 위해 올해 우선 규모화 집단화된 농지 1013㏊를 대상으로 볏짚환원 사업을 추진, 벼를 수확 후 볏짚을 잘게 썰어 가을갈이를 한 논에 지급할 계획이다.ha당 지원 단가는 15만원이다. 사업대상자 우선순위는 조직화, 집단화로 50㏊이상 고품질쌀을 계약재배하는 단지, 작목반, 볏짚시용 농가 순이며 다만 우수브랜드 및 친환경쌀 생산단지는 볏짚환원을 의무화해 이번 사업에서 제외된다.하지만 최근 사료값 폭동으로 대다수 농가의 볏집을 축산농가가 조사료용으로 ha당 30만원선에 사들이고 있어 낮은 지원단가로 인한 농가의 참여저조가 우려되고 있다. 이에 따라 시는 지역농협과 연계해 볏집환원 효과에 대한 홍보와 설득을 통해 참여자를 늘려갈 계획이다.또 농지소재지 읍면동에서 4월말까지 추가 신청을 받아 사업대상자를 선정하는 등 지속적으로 볏짚환원사업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시 관계자는 “볏집 환원사업 외에도 회현농협 광역친환경농업단지 조성사업이 마무리 되는 2013년부터는 자체 생산한 유기질 비료를 이용해 친환경쌀을 확대 재배해 군산쌀 이미지 제고 및 농업인 소득증대 향상에 기여하겠다”고 전했다.
윤휴(尹鑴)는 1660년(현종 1) 효종에 대한 자의대비(慈懿大妃)의 복제(服制)를 송시열 등 서인이 기년복(朞年服)으로 정하여 시행하자, 삼년상을 지내자는 참최설(斬衰說)을 들어 이를 반대했다. 서인이 정권을 장악하고 있던 정국에서 참최설은 남인의 서인 공격에 주요한 이론적 근거를 제공했는데, 기년복제는 왕과 사대부를 구분하지 않고 사대부의 예(禮)를 왕에게 잘못 적용하여 왕의 지위를 낮추고, 왕의 법통을 둘로 나누어버리는 논리이므로 어떤 경우든 삼년상을 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1675년(숙종 1) 효종비 인선왕후(仁宣王后)의 상을 당하여 다시 일어난 2차 예송에서 남인이 승리하여 집권한 뒤, 성균관사업(成均館司業)으로 조정에 나아갔다. 남인이 청남(淸南)과 탁남(濁南)으로 나뉘자, 허목(許穆)과 함께 청남을 이끌며 활동했다. 이해 승정원 동부승지·이조 참의·대사헌·성균관 좨주 등을 두루 거쳐 이조 판서에까지 승진했다. 이후 대사헌·좌참찬·우참찬·형조 판서·우찬성 등을 번갈아 역임했다.재직중 지패법(紙牌法)·호포법(戶布法)·상평법(常平法) 등 부세제도 개혁안을 여러 번 제기했으나 지패법을 변형한 호패법(戶牌法)만이 시행했다. 도체찰부(都體察府
군산시가 농촌동 일대에 다양한 농산물 생산을 위한 신선채소생산 단지를 육성하고자 재배농가, 원예협동조합과 함께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군산시농업기술센터(소장 장두만)는 농촌동인 개정동을 중심으로 월명상추 작목회를 통하여 원예협동조합(조합장 이태세)과 연계한 고품질의 군산 상추 생산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근교농업 활성화를 위해 상추재배 농업인에게 농업미생물(EM)을 공급하고 있으며, 원예협동조합에서는 군산에서 생산되는 채소를 소비자들이 즐겨 찾을 수 있도록 유통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 중에 있다. 농업기술센터 장두만 소장은 “다양한 효능을 가진 고품질 상추 생산은 물론 건강한 밥상을 위한 신선채소 생산에 더욱 힘쓰겠다.”고 밝혔다. 한편, 상추는 기원전 4,500년경부터 재배해 온 작물로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부터 재배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신경질 통증완화, 숙취해소나 피를 맑게 하는 효과, 빈혈예방, 이뇨작용, 변비치료, 피부건강 등의 효능이 있는 대표적인 쌈 채소이다.
지구온난화, 온실가스 감축의무 등으로 산림의 공익적 가치가 날로 급증하는 가운데 군산시가 저탄소 녹색성장 및 숲의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한 2012년 숲가꾸기사업(1차)를 추진한다. 금년에 성산면, 옥산면, 옥구읍 상평농공단지 주변 등 가시권지역에 2억 7천만원을 투입하여 큰나무 가꾸기(천연림보육‧개량) 175㏊를 실시하여 저탄소 녹색성장의 기반 조성에 심혈을 기울일 방침이다. 숲 가꾸기란 나무 줄기가 굵고 곧게 자라도록 경쟁목 및 주위의 필요 없는 나무 등을 솎아 베어 주고 가지치기 등을 하는 작업으로 나무가 과밀하여 생태적 활력도와 뿌리 발달이 부실하여 산림병해충, 산사태 피해 등이 우려되는 곳과 가시권 지역 산림 중 경관유지가 필요한 산림 등에서 추진된다. 군산시는 작년에도 국도비 보조사업비 6억원을 들여 군봉공원, 옥구읍, 대야면, 서수면 등 630ha에 어린나무가꾸기, 큰나무가꾸기(천연림보육‧개량, 솎아베기) 등을 실시한 바 있으며 앞으로도 지속적인 숲가꾸기를 실시하여 숲가꾸기의 품질혁신과 생태․환경적으로 건전하고 저탄소 녹색성장에도 크게 기여하는 산림을 지속적으로 조성해 나갈 계획이다.
남구만(南九萬)은 송준길(宋浚吉)에게 수학, 1656년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했다. 정언·이조 정랑·집의·응교·사인·승지·대사간·이조 참의·대사성 등을 거쳐서 1668년 안변부사·전라도 관찰사를, 1674년 함경도 관찰사를 지냈다. 숙종 초 대사성·형조 판서를 거쳐 1679년(숙종 5) 한성부 좌윤을 지냈다. 같은 해 남인인 윤휴·허견 등을 탄핵하다가 남해로 유배되었으나 이듬해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으로 남인이 실각하자 도승지·부제학·대사간 등을 지냈다. 병조 판서가 되어 무창(茂昌)과 자성(慈城) 2군을 설치했으며, 군정의 어지러움을 많이 개선했다.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나뉘자 소론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1684년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남인이 득세하자 강릉에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풀려났다. 1694년 갑술옥사(甲戌獄事)로 영의정이 되었고, 1696년 영중추부사가 되었다. 1701년 희빈 장씨를 가볍게 처벌하자고 주장했으나 숙종이 희빈 장씨를 사사(賜死)하기로 결정하자 사직하고 고향에 내려 갔다. 그뒤 유배·파직 등 파란을 겪다가 다시 등용되었으나 1707년 관직에서 물러나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숙종의 묘정(廟庭)에 배향되었고, 강릉의 신석서원(申
[더타임스 지만호 칼럼니스트]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간의 서울관악을 단일후보자 경선과정에서 일어난 일련의 꼼수는 진보당 대표 이정희 측의 계획된 조작으로 백일하에 밝혀졌다. 그럼에도 사퇴 거부로 맞서고 있는 이정희 진보당 대표의 뻔뻔한 태도를 보고 야당을 사랑하는 일반국민과 시민단체의 희망2013 승리2012원탁회의 원로회원들(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김상근 목사, 김윤수 전 국립현대미술관장, 정연주 전 한국방송공사 사장, 김은희 살림 정치여성행동 운영위원, 백승헌 희망과 대안 운영위원장, 황인성 시민주권 공동대표, 박석운 진보연대 공동대표) 마저 경선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나섰다.일개 공당의 대표라면 국민 보기가 부끄러워서 석고대죄를 하여야 함에도 끝까지 버티고 있는 작은 체구가 보여주는 위선의 배짱은 본인도 어쩔 수 없는 딜레마에 처해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 아닌가 짐작이 간다. 필자가 너무 관대한 생각으로 글을 쓰는 것 같다는 우파지지자의 여론에 몰매를 맞을지 모르겠으나 진정으로 이정희대표가 본인의 뜻과 다르다면 이차에 암흑의 마수에서 벗어나기를 제언해 본다. 즉! 민족해방이며 민중민주를 부르짖는 종북, 친북 단체의 조종에서 탈출하라는 의미이다. 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