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타임스 이종납 편집장] 박성철 행복세상만들기운동본부 상임대표(59)는 오랜 공직생활과 봉사활동 경험을 바탕으로 대구 서구 지역 주민들이 원하는 정치를 펼치기 위해 4.11총선에 출마키 위해 예비후보로 등록하고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박 후보는 “대구에서 가장 번창했던 서구가 가장 낙후된 지역으로 전락한데는 기존 정치권의 책임”이라고 지적하고 “침체된 서구경제를 재건하고 대구경제 활성화를 이끌어 내겠다”고 약속했다.박 후보는 특히 “지역정치권에서는 드물게 전국규모의 공무원 노조위원장을 지낸 남다른 경력을 바탕으로 대구 정치권에 새 바람을 불러 일으키겠다”고 다짐했다.박 후보는 ‘서구지역 경제재건과 권역확장을 위해 서대구역 신설’과 ‘공업지역인 서대구공단의 용도변경과 동시 신도시 건설’ ‘하수처리장 등 혐오시설 지하화’ 등 획기적인 공약을 내세우며 서구민심을 파고 들고 있다. 박성철 예비후보는 지난 1970년 당시 17세의 나이로 고향을 떠나 대구로 올라와 풍국산업,애경유지 등에서 근무를 하면서 중,고등학교를 검정고시를 거쳐 한국방송통신대학 법학과를 졸업, 경북대학학교 국제대학원에서 국제경제학을 전공하는 등 뜨거운 학구열을 보이기도 했다.박 후보는 육군 병장으
411에 실시하는 국회의원 후보공천 신청접수가 6일부로 시작되었다.새 누리당과 민주통합당에서는 공천신청자들에 대한 자당의 내부적 기준을 정해 놓은 것 중에 현역의원 노령자들에 대한 공천 배제 설이 흘러나오면서 부터 해당의원들은 몹시 당황하는 분위기이다.모당의 의원께서는 대한노인회에 협조문을 보내서 노령자배제 반대를 위한 역할을 해 줄 것을 로비하였다는 것이다. 즉! 대한노인회 측에서 노령자 각당의 공심위는 노령의원후보에 대한 카트라인을 철폐하라는 성명서를 각 언론에 발표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는 것이다.이에 대한노인회 측 모 임원의 이야기로는 노령의원으로 해당되는 각 당의 의원65명의 지지 서명을 먼저 받아 오도록 주문하였다니 참으로 올바른 판단과 소신 있는 행동이라고 칭찬하고 싶다.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노인이라고 국회의원을 하지 말라는 법률적 근거는 없다. 그러나 현직 생활을 잘 마무리 하고 은퇴한 후 조용히 생을 지내고 있는 어르신들에게 권력의 유혹을 불러일으키는 유행병이 생길까 봐 걱정돼서 하는 말이다.아울러 정치 불신 사회에서 신뢰받는 정치판을 만들려면 청렴하고 참신성 있는 젊은 사람들이 이번 기회에 많이 나서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나철(羅喆)은 한학을 공부하고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을 하였으나, 강진의 오기호, 부안의 이기 등 호남 출신의 지식인들과 함께 비밀 조직인 유신회(維新會)를 조직하고 일본에 건너가 동양 평화를 위한 단식농성을 하는 등 일찍부터 민족주의적 운동에 관심이 많았다. 을사늑약이 늑결된 뒤에는 을사오적을 암살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나철은 이후 점차 한일 강제 병합의 분위기가 무르익어가자, 민족 종교 운동으로 관심을 돌려 1909년 1월 15일 한성부에서 대종교를 창시했다. 경술늑약 이후로는 일제의 박해를 피해 교단을 간도 쪽으로 이동했는데, 이때 서일을 비롯한 대종교인들이 독립 운동에 대거 뛰어들었다.1916년 구월산 삼성사에서 수행하다가 자결했다.
[더타임스 이종납 편집장]지난 40여년간 대일 청구자금 개인보상을 위해 청춘을 다바쳐온 (사)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양순임 회장. 지난 2009년에 ‘대일 청구자금의 개인보상’을 위해 대일민간청구권소송단(대표 김인희, 장선희)이 발족되었는데 이것이 최근 언론에 유포되고 있는 악소문의 화근이 되었다. 양 회장은 청구소송단이 발족됨과 동시에 방미해 국제문제 변호에 경험이 있는 마이클 최와 수임계약을 체결했다. 마이클 최도 즉시 방한해 3일동안 전국을 돌며 유족회원들을 상태로 개인보상문제에 대한 향후 대책을 설명하는 등 문제해결에 대한 기대감을 주었다.이 무렵 마이클 최는 한국동포 사기사건에 연루되어 교포사회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 국제변호문제에 전념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청구소송단의 김 대표와 장 대표와의 갈등이 빚어지자 김 대표가 서울광역수사대에 ‘유족회원들을 대상으로 받은 회비를 편취했다’며 양 회장을 경찰에 고발했다. 고발장을 접수한 서울광역수사대는 지난해 1월 양 회장 자택을 압수수색하고, 가정의 현금까지 압수한 후 사기용의자로 언론에 이 사실을 유포시켰다. 경찰주장에 의하면 “장 대표가 양 회장의 위임을 받아 당시 유족회원을 비롯해 유족회원이 아
정인보(鄭寅普)는 1913년 상하이로 건너가 박은식, 신규식 등과 함께 동제사를 결성했다.귀국한 뒤 연희전문학교에서 강의하며 저술 활동을 했다. 일제 총독통치 말기에는 창씨개명 등을 강요하는 분위기에 저항하여 산 속에서 은둔 생활을 하였다.은둔생활을 하다가 1945년 8월 대한 광복 후에 국학대학의 초대 학장을 지냈다. 광복 초에 정인보는 광복절노래를 직접 짓기도 했다. 1945년 12월 23일 오후 2시 김구가 주관하는 순국선열추념대회에 참여하여 순국선열추념대회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김구가 모스크바 3상회의에 반발, 강력한 신탁통치(信託統治) 반대운동을 추진하자 12월 30일 결성된 신탁통치(信託統治) 반대 국민총동원위원회 위원이 되었다.1946년 조선사연구를 저술했다. 2월 14일 민주의원결성대회가 열렸으나 정인보는 여운형, 함태영, 김창숙, 조소앙 등과 함께 민주의원 의원직을 거부하였다. 1948년 8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이승만에 의해 삼고초려로 초대 감찰위원장에 선임되었으나, 임영신의 독직 사건을 두고 대통령 이승만과 갈등을 빚고 물러났다.
김육(金堉)은 1605년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성균관에 들어가서 수학하였다. 1605년 진사시에 급제하고 이후 성균관에 입학하여 유생으로 공부하였다. 성균관 유생의 신분으로 1610년 3번이나 상소를 올려 성혼(成渾)의 원통함을 풀어줄 것을 요청하였고, 이른바 5현을 문묘에 모시는 5현 종사를 건의하였다. 1611년 정인홍 등이 이황(李滉)을 극렬하게 비난하는 상소를 올리자 이에 격분하여, 정인홍의 이름을 삭제하는 부황에 앞장섰다가 성균관에서 퇴교당했다. 이후 경기도 가평군 잠곡리(潛谷里)로 낙향, 농사지으며 학업에 열중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서인이 집권하게 되자 조정에 나가 의금부 도사가 됐고,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인조를 모시고 피난했다가 돌아왔으며, 환도 후에 음성 현감으로 부임하였다.1624년(인조 2년) 증광 문과에 갑과로 급제하고 정언에 임명됐다가 1633년 안변 도호부사로 부임하여 청나라의 침입을 대비하였다.1636년 명나라에 파견될 성절사(聖節使)로서 연경에 갔으며, 1637년 명나라에서 병자호란의 발발과 인조의 항복 소식을 접하였다.명나라에 다녀와서 남긴 조천일기(朝天日記)에는 그가 직접 목격한 명나라 관원의 타락과 어지러운 사회 분위
한국바른기자단 이 출범할 예정이다. 한국바른기자단(이하 약칭 바른기자단)은 2월 4일(토) 서울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 있는 발렌타인에서 발기인 모임을 갖고, 창립취지 및 다음달 창립대회에 따른 각종 현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공동대표로 선임된 소찬호 더타임스 전 대표는 2012년은 국운을 좌우할 중요한 해가 될 것이다며 이럴 때 모두가 공동으로 추구하는 대한민국의 정체성 확립과 자유시장 성장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 했다. 바른기자단의 특징은 기성 언론관련 단체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 첫째 지역을 가리지 않는 전국적인 모임이다. 둘째 각 언론사의 직책에 관계없이 언론에 종사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참여 가능하다. 세째 지면지와 인터넷을 가리지 않아 온오프라인 일간,주간,월간 모두를 망라해, 현재 100여 언론인(사)가 뜻을 같이하고 있다. 바른기자단은 대한민국의 당면문제를 논의하고 지역현안 분석과 문제해결을 위한 대안을 고민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건전한 발전을 지향함에 목적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해 향후 정관계,경제계,학계,사회단체 등 다양한 계층과 네트워크를 구축해서 사회공동체 강화와 의식혁신 활동도 주도해 갈 방침이다. 이날 발기인 대회에서 공동대표에
방정환(方定煥)은 1919년 3월 1일 3.1 대한광복운동이 일어나자 직접 등사판으로 찍은 독립신문을 발행하여 중학생들의 도움으로 돌리다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고문을 당했다.1919년 말, 일본 도쿄의 동양대학 철학과에 입학하여 아동 문학과 아동 심리학을 공부했다. 일본 경찰은 독립운동경력이 있는 유학생 방정환을 형사를 보내 감시하였다. 1920년~1923년 사이 유학 기간에 천도교 잡지인 개벽에 계급 투쟁을 주장하는 사회주의 성격의 우화들을 연재하였다. 1920년 개벽 3호에 번역 동시 ‘어린이 노래: 불 켜는 이’를 발표하였는데 이 글에서 어린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하였다.1921년에는 일본 유학 기간동안 외국동화를 번역한 사랑의 선물을 출판하였다.1921년 한성에서 천도교 소년회를 만들었다. 한편 방정환은 전국 순회강연을 통해 뛰어난 이야기꾼으로 활약했는데, 강연내용은 어린이들을 위해 그들의 인격을 존중하자는 것이었다. 1923년에는 한국 최초의 순수아동잡지인 월간 어린이를 창간하였다. 방정환은 자신의 특기인 재미있는 구연동화로 현실의 장벽을 극복하였다. 어린이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잡지를 선전하였던 것이다.어린이는 이원수, 마해송 선생 같은
프랑스 패션 브랜드 루이까또즈(대표 전용준, www.louisquatorze.com)가 2012년 봄•여름 콜렉션을 공개했다. 루이까또즈는 31일 서울 청담동 본뽀스또에서 ‘2012 SS 시즌 콜렉션’을 열고 신제품을 선보였다. 루이까또즈의 이번 시즌 콘셉트는 ‘상상의 여행(Travel in the imagination)’이다. 루이 14세 시대에 두려움 없이 미지의 아메리카 대륙으로 향했던 여인들의 삶이 모티브가 됐다. 낯선 땅에서 탄생한 이색 문화와 감성을 루이까또즈 제품에 고스란히 담았다.봄•여름 콜렉션의 메인 컬러는 오렌지와 브라운이다. 장식을 배제한 디자인에 오렌지 계열 컬러의 화사함을 강조한 핸드백은 판타지적 감성을, 클래식한 스타일의 브라운 컬러 핸드백은 세련되고 내추럴한 매력을 느끼게 한다. 컬러와 질감의 특징을 강조한 깔끔한 디자인에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외관이 눈에 띄는 포인트다. 하나의 아이템으로 토트, 숄더, 클러치 등 다양한 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어 실용성 면에서도 뛰어나다.이번 시즌 루이까또즈는 인디언 수공예품의 독특한 이미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컬러 표현력이 높은 가죽 소재 바디에 레드, 블루 등 원색이 얽
프랑스 패션 브랜드 루이까또즈(대표 전용준, www.louisquatorze.com)가 졸업과 밸런타인데이가 있는2월 한달 동안 할인혜택과 경품을 증정하는 풍성한 이벤트를 마련했다. 루이까또즈는 우선 패션 브랜드 최초로 ‘카카오톡 플러스친구(이하 카톡 플친)’ 서비스를 오픈하고 이달 14일까지 카톡 플친 단독 할인행사를 진행한다. 매장에서 핸드백 구입시 카톡 플친을 통해 받은 메시지 쿠폰을 보여주면 10% 할인과 더블 포인트 혜택을 제공한다. 또한 19일까지 루이까또즈 페이스북(on.fb.me/n9fpww)에 카톡 플친 등록 인증 이미지를 올리면 총 40여명을 추첨해 2012년 SS 신제품 핸드백, 여성 중지갑, 명합지갑 등을 증정한다. 이벤트 참여 고객 중 루이까또즈 온라인 직영몰에 신규 가입한 회원에게 포인트 1만원을 지급하는 이벤트도 동시에 진행한다. 카톡 플친으로 등록하면 향후 꾸준히 루이까또즈의 최신 정보, 고객 이벤트, 할인 쿠폰등을 받아볼 수 있다루이까또즈는 밸런타인데이 스페셜 이벤트도 진행한다. 이달 3일부터 서울 강남지역 5개 매장(롯데 잠실∙강남, 현대 본점∙무역, 신세계 강남)에서 핸드백을 구매하는 선착순 350명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