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시즌을 맞아 8월 31일까지 진행되는 이번 여름세일은 실용적인 디자인 상품을 선보여 인기를 얻고 있는 현대카드 프리비아 쇼핑(privia.hyundaicard.com)과 현대카드가 독점으로 국내에 선보이는 모마온라인스토어코리아(www.momaonlinestore.co.kr) 상품들을 대상으로 실시된다. 현대카드 프리비아 쇼핑에서는 가구, 데스크 용품, 어린이, 스포츠, 가전 등의 총 750여종의 상품을 최대 50%까지 할인 받을 수 있으며, 뉴욕 현대미술관의 감성을 담은 모마온라인스토어코리아에서는 디자인 상품을 최대 60%까지 할인 받을 수 있다. 또한 모마는 현대카드 M포인트 100% 사용이 가능해 더욱 경제적인 쇼핑이 가능하다.현대카드 프리비아에 많은 성원을 보내준 고객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실시되는 이번 세일에서는 대표적으로 스텔톤, 르크루제와 같이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주방용품과 기능성 사무가구인 허먼밀러(HermanMiller), 어린이들을 위한 윌리버그(Wheelybug) 그리고 애플(Apple) 맥북 에어 등을 보다 경제적으로 구입할 수 있다. 특히 세계 최초의 날개 없는 선풍기 다이슨의 에어멀티플라이어를 10% 할인된 가격에 M
생활용품 전문기업 CJLION(대표 와다 케이지, www.cjlion.net)의 구강관리 브랜드 시스테마는 치주병 예방을 위한 맞춤형 초극세모 칫솔 ‘약한 잇몸용 칫솔’을 출시한다고 19일 밝혔다.일반 칫솔모의 1/2 굵기인 0.1mm의 초극세모로 약한 잇몸이 신경 쓰이는 고령층이나 임산부를 위해 새롭게 선보이는 약한 잇몸용 칫솔은 280개 내외의 풍성하게 심어진 고밀도 식모로 자극없이 프라그를 제거할 수 있다. 120년 전통 일본 라이온사의 기술력으로 국내에서 가장 가는 초극세모를 사용해 잇몸 자극은 최소화했으며 칫솔모 벌어짐 현상도 개선해 보다 오래 사용할 수 있다. 특히 바깥쪽의 풍성하게 심어진 가는모가 치아와 잇몸에 부드럽게 밀착해 자극없는 양치질이 가능하다. 약한 잇몸용 칫솔은 특별한 잇몸 관리가 필요한 고령층과 임산부를 주 타겟으로 출시되었으며, 특히 임산부의 경우 임신으로 인한 여성 호르몬의 증가는 잇몸혈관을 얇게하고 잇몸이 쉽게 붓게 되며, 체온 상승으로 인해 입속 세균번식이 쉬워져 치주병의 발병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임신 초기부터 각별한 관리가 필요하다. 고령층의 경우에도 임플란트 시술 후 임플란트 치아와 잇몸 사이가 들뜨게 되어 치주병균
민주당이 내년 총선과 대선의 승리를 위해 제기 된 ‘민주당 헌신론, 호남 물갈이론’에 대한 본격적인 움직임이 가시화 되고 있다.손학규 대표가 야권통합을 이루는 마지막 조건은 “민주당의 헌신과 희생”이라고 강조한 가운데 민주당 호남 중진의원들의 잇단 탈(脫)호남 선언이 신선한 바람을 불러 오고 있다.[더타임스 장지연 칼럼니스트] 민주당 호남 중진의원들 중 가장 먼저 불을 지핀 사람은 전주 완산에서 4선 의원을 지낸 장영달 전 의원이다. 장 전 의원은 지난 6일 “진보세력이 영남의 민심을 얻지 못하면 내년 총선과 대선의 승리는 없다”며 경남 함안.합천.의령.지역의 출마를 전격적으로 선언했다.이날 그의 기자회견장에는 정세균 전 민주당 대표와 김근태 상임고문, 한명숙 전 국무총리, 이부영 전 의원등이 함께 참여해 장 전 의원의 결단을 높이 평가 했다.이어 정세균 전 민주당 대표가 서울 출마를 공식화 했다.정 전 대표는 전북 진안.무주.장수.임실.에서 4선을 지냈으며 2009년 대표시절 정동영 최고위원의 무소속 출마를 만류하기 위해 다음 총선에 지역구 출마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었다.정 전 대표는 손학규 대표의 ‘분당을’ 출마로 공석이 된 서울 종로구의 출마를 검토하
김가진(金嘉鎭)은 시문(詩文)과 글씨에 뛰어났으며 1877년 규장각 검서관(檢書官)에 발탁되었고 1883년 유길준과 함께 외교통상 업무를 관장하는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의 주사(主事)로 임명되었다. 1886년 정시문과(庭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홍문관 수찬(弘文館 修撰)이 되었다. 김가진은 개화정책을 주도하였는데 중국 양무운동을 시찰하였으며 주차일본공사관참찬관(駐箚日本公使館參贊官)에 임명되어 수년간 동경에 주재하였으며 이후 주일본판사대신(駐日本辦事大臣)으로 임명되었다. 공조판서(工曹判書)를 거쳐 1895년 농상공부대신(農商工部大臣)이 되었으며 개혁정책의 실무를 담당했다. 1895년 4차 김홍집 내각에서 상무회의소 발족, 건양협회(建陽協會) 창립에 가담하였다. 1896년 7월 2일 독립협회가 창설되면서 위원으로 선출되었고 독립문을 조성하는데 기여하였으며 만민공동회(萬民共同會)에 가담하여 헌의 6조의 실행을 촉구하였다.1904년 외무대신, 법무대신, 중추원 부의장을 역임하였고 대한자강회, 대한협회에 가담하여 적극 활동하였다. 1919년 3·1 대한광복운동이 일어나자 대한광복운동에 투신하였는데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대
남궁억(南宮檍)은 1887년 전권대신 조민희의 수행원으로 상하이에 갔고 궁내부 별군직을 역임하고, 1894년 내부 토목국장을 맡았으며 흥화학교에서 영문법과 국사를 가르치고 독립협회에 가입했다. 1896년 7월 2일 독립협회는 창립총회를 가졌으며 남궁억은 독립협회의 수석 총무와 사법 위원을 겸하였다. 1898년 황성신문사 사장이 되었고 1902년 러·일의 한국분할설과 러일협정을 공박하였으며, 성주목사와 양양군수를 역임하고 양양에 현산학교를 설립하고 1907년 대한협회 회장이 되었으며 1908년 교육월보를 간행하였고 관동학회 회장이 된다.1910년부터 8년간 배화학당 교사로 9년간 재직하였다. 일제가 민족 정기를 말살하기 위한 일장기, 벚꽃 보급에 항거해 모곡리의 감리교 전도사로 일하던 남궁억은 민족정신 고양을 위해 무궁화 묘목을 전국에 보급하였다. 1918년 강원도 홍천군 서면 모곡리에 내려와 모곡 감리교회를 세우고 전도사로 목회하면서 더불어 교회 내에 4년제 보통학교를 설립하였다.
1~3대 이승만 (李承晩) 재임 1948.07 ~ 1960.04 전 정무공무원, 독립운동가 4대 윤보선 (尹潽善) 재임 1960.08 ~ 1962.03 전 정무공무원, 전 국회의원 5~9대 박정희 (朴正熙) 재임 1963.12 ~ 1979.10 전 정무공무원, 전 군인 10대 최규하 (崔圭夏) 재임 1979.12 ~ 1980.08 전 정무공무원 11,12대 전두환 (全斗煥) 재임 1980.09 ~ 1988.02 전 정무공무원, 전 군인 13대 노태우 (盧泰愚) 재임 1988.02 ~ 1993.02 전 정무공무원, 전 군인 14대 김영삼 (金泳三) 재임 1993.02 ~ 1998.02 전 정무공무원, 전 국회의원 15대 김대중 (金大中) 재임 1998.02 ~ 2003.02 전 정무공무원, 전 정치인 16대 노무현 (盧武鉉) 재임 2003.02 ~ 2008.02 전 정무공무원, 전 변호사 17대 이명박 (李明博) 재임 2008.02 ~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의 대북정책은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햇볕정책으로 정의 할 수가 있다.그러나 이명박 정권은 이러한 햇볕정책을 얼음정책으로 철저하게 전환 시킴으로 인해서 남북관계는 최악을 맞고 있다고 단정 할 수 밖에 없다. 북한은 지금 김정길 위원장의 건강 문제와 김정은 으로의 세습문제 등으로 북한 내부를 결속시킴으로써 통제기능 강화 등 여러가지 정치적 목적으로 남북관계를 대결 국면으로 전환할 필요성을 느낄 수 있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은 과거 정권의 대북정책인 햇볕정책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남북대결 구도를 부채질 하는 정책으로 한반도를 전쟁위기로 몰고가서는 안된다. 이제라도 이명박 정권은 대북정책을 어둠과 얼음의 정책에서 新햇볕정책으로 전환하는 길만이 남북이 공생하는 길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최근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는 중견 언론인 모임인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박근혜 대세론,은 지난 2007년 대선당시 이명박 대세론,과 유사한 형태로 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어떻게 보면 내년 총선과 대선을 관리해야 할 대표가 대세론을 내세워 특정인을 한나라당의 대권 후보로 규정하는 발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러한 발언에 대하여 한나라
조폭 외교로 악명 높은 중국이 또 외교적 결례를 범했다. 중국군 천빙더 총참모장은 지난 14일 베이징에서 열린 김관진 국방장관과의 공식 면담 도중 15분간 일방적으로 미국을 맹비난했다.이날 천 총참모장은 중국과 주변국 사이에 분쟁이 생길 때 미국이 그런 나라들과 군사 훈련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얘기했다면서 미국은 초강대국이어서 다른 나라에 이래라저래라 얘기하는 것이고 만약 다른 나라가 미국에 이렇게 얘기하면 그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미국을 비난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그는 미국 사람들과 무슨 문제를 토의할 때는 어려움이 많다. 한국과 미국도 동맹이지만 그런 느낌을 받을 것이라며 패권주의는 항상 패권주의에 맞는 행동이나 표현을 하는데 미국이 하는 것은 패권주의의 상징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한국과 미국은 60여년간 경제적-군사적 동맹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다. 직책이 김관진 국방장관보다 낮은 일개 총참모장이 김 장관 앞에서 한국의 우방국을 노골적으로 비난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심각한 외교적 결례다.더군다나 다른 나라도 아닌 중국이 미국의 패권주의를 거론했다는 것은 허무개그에 가깝다. 우리는 지난해 천안함 폭침 이후 한 중국 외교관이 미국만 아니었으면 한국을
한규설(韓圭卨)은 1898년 중추원 의장이 되었으며, 독립협회가 고조 광무제에게 의원 설치를 건의하자 이에 호응해 새로운 중추원관제를 공포하게 했다. 11월 독립협회 지도자 17명이 체포되고 독립협회의 혁파가 논의되자 이들을 석방하고 민의를 존중하자고 주장했다. 법부대신에 임명되었으나, 1899년 정부의 반격으로 독립협회가 강제 해산될 때 해임되었다. 1901년 궁내부특진관에 임명되었고, 1902년 다시 법부대신이 되었다. 1904년 12월 미국에게 대한제국의 독립 유지를 위한 노력을 당부하는 고조 광무제의 밀서를 이승만(李承晩)·윤병구(尹炳求)에게 전달했다. 1905년 의정부 참정대신이 되었으며 일본 전권대사 이토 히로부미가 을사늑약을 강제로 늑결하려 하자 일제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반대하다가 경운궁 수옥헌(漱玉軒)에 감금되고 면직당했다. 을사늑약 이후 중추원 고문 궁내부 특진관을 지냈으며, 1907년 4월 국채보상지원금총합소 소장이 되었다.
박정양(朴定陽)은 1881년 조사 시찰단(朝士視察團)의 일원으로 일본을 시찰하고 돌아와서 이용사(理用司)의 당상경리사(堂上經理司)가 되었다. 관제 개혁 등에 앞장섰으며, 1882년 대사성·이조 참판·좌승지를 거쳐 1883년에 기기국 총판(機器局 總辦)·내무 협판·협판군국사무·대사헌·협판교섭통상사무 (協辦交涉通商事務)·도승지·협판내무부사를 역임했다. 1887년 미국 특파 전권공사(全權公使)로 부임하여 미국 대통령 클리블랜드에게 신임장을 제정하는 등 외교활동을 하였다.1894년 호조 판서·교정청 당상(校正廳 堂上)·한성부 판윤을 지내고 갑오개혁으로 군국기무처(軍國機務處)가 신설되자 회의원(會議員)이 되었다. 김홍집의 1차 내각에 학부대신이 되고 1895년 내각 총리대신이 되어 과도 내각을 조직했다. 1896년 아관파천이 일어나자 총리대신 서리와 궁내부대신 서리를 겸임했다. 9월 내각을 의정부로 개혁하자 참정대신(參政大臣)이 되고 1898년 독립협회가 주최하는 만민공동회에 참석하였다.11월 독립협회에 대한 황국협회(皇國協會)의 폭력탄압사건이 발생하여 개각이 되자 내부대신이 되었다. 온건중립파로 이상재(李商在) 등 개화파(開化派) 인사들을 돌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