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 유생의 특별시험 황감제 황감제(黃柑製)는 해마다 동짓달이나 섣달에 제주 목사(牧使)가 귤 · 유자 · 감 따위의 특산물을 진상(進上)하면 그 일부를 성균관(成均館)과 4학(四學)의 유생(儒生)들에게 나누어 준 뒤 어제(御題)를 내려 고시(考試)하여 거수자(擧手者)에게 급제(及第)를 준 것인데 1564년(명종 19)부터 시행되었다.그 고시절차를 보면 대제학(大提學)이 패초(牌招)를 받고 입궐하여 시제(試題)를 적어 임금의 낙점(落點)을 받는다. 대제학(大提學)은 승지 및 중사(中使)와 함께 성균관 명륜당(明倫堂)으로 가는데 승지(承旨)는 어제(御題), 중사(中使)는 귤을 가져간다. 명륜당(明倫堂)에 도착하면 어제(御題)는 북벽의 서안(書案) 위에, 귤은 상 위에 봉치(封置)한다. 중사는 동벽의 수좌(首座)에 앉고 승지는 그 다음에 앉으며, 대제학과 본관 당상관(堂上官)들은 중사 및 승지와 서로 읍례(揖禮)한 뒤에 서벽에 앉는다. 대제학이 무릎을 꿇고 승지 앞에 나아가 어제를 받아 제자리에 돌아가 앉는다. 대제학 · 본관 당상관 · 중사 및 승지에게 귤 5개씩, 제 낭청(郞廳)에게 2개씩을 나누어 주고 양재(兩齋) 재임(齋任)과 거재(居齋) 유생에게 1개씩, 방외 유생에게는 한 개를 네쪽으로 내어 나누어 주는데 수복(守僕)이 반(盤)에 얹어서 나누어 준다. 양재(兩齋) 재임(齋任)이 유생들을 이끌고 사배례(四拜禮)하고 무릎을 꿇으면 비로소 시제가 게시된다. 유생들은 부복(俯伏)했다가 일어나 시제를 읽고 답안 작성에 착수하였다. 고시과목은 10과 중 1편을 고시하였다. 고시시간은 극히 짧아 중사(中使)가 귤을 나누어 주고 국왕에게 복명(復命)할 때까지 답안을 제출해야 했다.응시자격은 성균관(成均館)에 유숙하며 공부하는 반유(泮儒)에게만 주었으나, 국왕의 특명이 있을 때는 방외(方外) 유생에게도 주었다. 시험이 끝나면 승지(承旨)가 시험 답안지인 시권(試券)을 가지고 입궐하고, 대제학(大提學)이 빈청(賓廳)으로 직행하여 대기하고 있는 양관(兩館 :홍문관ㆍ예문관) 제학(提學)과 함께 과차(科次)하였다.황감제(黃柑製)는 처음에 거수(擧手) 1인에게 급제(及第)를 주었으나 영조 24년(1748) 이후는 경유(京儒) 1인, 향유(鄕儒) 1인에게 급제(及第)를 주는 경우가 많았다. 더타임스 김민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