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동렬(柳東說)은 1904년부터 대한제국의 군인으로 활동하며 육군 기병 정위, 육군 참령 등을 역임하였고 일본 육군사관학교 출신 무관들과 비밀결사인 효충회(效忠會)를 조직하였으며 신민회,서우학회, 서북학회 등 애국계몽단체에 평의원으로 참여하였다. 1909년 중국으로 망명한 류동렬은 독립운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1910년 10월 국내로 잠입하다 일본헌병대에 체포되었고, 데라우치 총독 암살 미수 혐의로 1913년까지 옥고를 치렀다. 중국으로 망명하여 1915년 3월 상하이에서 신한혁명당(新韓革命黨), 1918년 4월 하바로프스크에서 한인사회당을 창당하였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참모총장으로 1년 반 동안 활동하였다. 조선혁명당을 창당하고 1931년 일제의 간도 침략으로 중국으로 이동한 후에는 임시정부 국무위원으로 활동하는 한편, 중국과의 연합단체인 중한민중대동맹을 조직하였다. 1935년 7월 민족혁명당을 창당되자 당의 중앙집행위원장 겸 군사부장으로 활동하였다. 임시정부 군사위원을 역임하고 1939년 임시정부 국무위원과 참모부장으로 선임되어 군사계획을 수립·추진하는 총책임자로 활동하였다. 1940년 9월 17일 한국광복군 창설 후 참모총장으로 임시정부의 군사정책과 활동을 주관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