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관순(柳寬順)은 공주에서 전도하던 감리교 선교사 사부인(史婦人 :Alice Hammond Sharp)의 권유로 1916년 이화학당(梨花學堂) 보통과에 입학하였으며, 보통과를 졸업한 1918년 이화학당 고등과에 입학하였다. 사부인(史婦人) 엘리스 샤프는 집안 사정이 어려운 류관순을 배려하여 장학금을 받고 공부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한성에서 3·1 대한광복운동에 참가. 학생들이 다칠 것을 걱정한 프라이 교장이 3.1 대한광복운동 참여를 만류했으나, 학교 담을 넘어가서 3.1 대한광복운동에 참여했다. 1919년 3월 10일 모든 학교에 임시휴교령이 내려지자, 류관순은 같은 이화학당을 다니던 사촌 언니 류예도와 함께 고향인 천안으로 내려갔다.고향인 천안으로 내려가 아우내(천안 병천)에서 3.1 대한광복운동을 지휘했다. 일본 헌병대는 류관순의 부모를 죽이고 류관순을 체포하여 검사국으로 이송하였다.류관순은 공주 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형이 선고되었으며 경성 복심법원에 항소하여 징역 3년형이 언도되었다.1920년 9월 28일 서대문감옥에서 모진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옥사(獄死)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