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 운종가(雲從街)에는 규격이 통일된 시전(市廛)이 설립되어 90여 종의 물품을 전문적으로 판매하였다. 비단·무명·명주·모시·종이·어물을 파는 육의전(六矣廛) 상인들은 특정 상품에 대한 독점판매권을 받는 대신 국가에 대하여 관수품(官需品)을 바쳐 납세에 대신할 의무가 있었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산업이 크게 일어나고 화폐가 보급되면서 난전(亂廛)이라 불리는 사상(私商)들의 활동도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18세기 말 이래로 한성에는 이현(梨峴)·칠패(七牌)·종루에 새로운 상가가 번창하여 시전과 어깨를 겨루게 되었다. 대동법이 실시되면서 공인(貢人)들의 상업활동이 눈에 띄었는데 관청에서 공가(貢價)를 받아 필요한 물품을 사서 관청에 납부하였다.17세기 후반 세곡 운송을 통해서 교역로를 확보한 경강상인(京江商人)이 한강을 중심으로 미곡과 어물의 수송과 판매를 통해서 막대한 이득을 얻었다. 지방에는 부보상(負褓商)이라는 행상단이 있어서 생활필수품을 향촌에 공급하였는데, 16세기 이래로 장시(場市)가 생겨나면서 장시를 순회하며 거래하였다. 장시는 조선 후기에 전국적으로 확대되어 18세기 중엽에는 1,000여 개소가 개설되었다. 상품화폐경제의 발달에 따라 일부 장시가 상설시장화하자 강경·대구·안동은 상업도시로 성장하였다. 이들 장시(場市)에서는 대규모 교역이 행해져 도매업과 위탁판매업·창고업·운송업·숙박업 등에 종사하는 객주(客主), 여각(旅閣)이 나타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