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직(李耕稙)은 1892년 전라도관찰사가 되었고 12월 전라도 삼례역(參禮驛)에 모인 동학교도들이 교조 최제우(崔濟愚)의 신원(伸寃)을 요구하는 소장을 제출하자 동학은 이단이므로 계속 금압할 것이며, 교도들에 대한 지방 관리의 침학을 금단하겠다고 약속하여 동학교도들을 해산시켰다. 이듬해 동학교도 40여 명이 과거 응시를 가장하여 한성으로 올라가 경복궁 광화문 앞에 엎드려 고조 광무제에게 직접 교조 신원(伸寃)을 요구하였고 동학교도들의 상경을 막지 못하여 파면되었다. 이경직은 1895년 궁내부대신이 되었으며 8월 20일 이토 히로부미 일본 총리의 사주를 받은 일본 공사 미우라 고로가 일본군과 낭인을 동원, 경복궁으로 난입해 명성황후를 살해할 때 침전인 건청궁 옥호루(玉壺樓)에서 난입하는 일본군과 낭인들을 막다가 총탄을 맞고, 고조 광무제가 보는 앞에서 일본군의 칼에 찔려 죽었다. 1897년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의 직계, 1899년에는 의정부(議政府) 의정(議政)으로 추증(追贈)되었으며 1900년 장충단(奬忠壇)에 제향(祭享)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