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희는 “장자를 폐하고 아랫사람을 세움은 재앙을 부르게 되는 근본이고, 또 세자가 비록 미쳤다고 하나, 그 성품은 가히 성군이 될 것이오니, 치유에 주력하시기 바란다.”며 폐세자에 반대하는 주장을 굽히지 않아 결국 귀양까지 갔다. 관용의 재상으로 알려진 황희는 이처럼 목숨이 오락가락 할 상황속에서도 원칙과 소신을 견지해 왔고 후일 더 크게 중용되어 조선시대를 통틀어 최고, 최장의 명재상으로 이름을 날리게 됐다. 오늘날 이념실종과 정치적 혼란이 거세지는 등 작금의 정치상황도 묘하게 돌아가지만 방법과 가치는 달라도 각기 처한 곳에서 ‘국익을 위해 독배’를 드는 경우가 더러 있다. 박세일 선진통일연합 상임의장과 이완구 전 충남지사 그리고 오세훈 전 서울시장 이들 3인은 각각 자신의 정치적 신념과 정책적 노선차이 때문에 현직을 박차고 나온 인물들이다. 박세일 의장은 지난 2004년 제17대 총선 때 국회의원이 되었고 박근혜 전 대표가 한나라당 대표로 있을 당시 정책위의장을 맡았는데 당시 ‘수도분할’정책에 반대했지만 한나라당받아들이지 않자 당초 약속대로 국회의원직을 내놓았다. |
박 의장은 정치권 입문 직전 박 전 대표의 최측근 자문역을 맡을 당시에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난 과오에 대한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도 정리가 필요하다’며 박 대표의 사과 필요성을 거론할 정도로 ‘직언을 서슴지 않고 할 말은 하는’ 정치적인 소신을 보여주기도 했다. 충남북 경창청장을 지냈고 국회의원을 지낸바 있는 이완구 전 충남지사는 지난 2006년 5.31 지방선거에서 충청남도 도지사에 당선되었지만 정부가 세종시 원안추진 대신 세종시 수정안을 제출하자 도정책임자로서 책임을 지고 도지사직을 사퇴했다. 이 전 지사는 국가경영에 있어 철학과 가치가 다를 수 있고, 국가 구성원 상호 간의 이해관계와 시각의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200만 도민을 받드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좌고우면해선 안되고, 충청민의를 대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충청의 영혼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하고 사퇴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변호사와 국회의원을 거쳐 지난 2006년 서울시장에 당선되었고 4년 후인 2010년에 이른바 강남몰표에 힘입어 첫 재선시장에 성공했다. |
오 전 시장은 “복지정책은 한번 시행하면 중단할 수 없는 불가역성이 있을뿐 아니라 대중영합주의 정치를 넘어서야 진정한 민주주의가 성장할 수 있다며 주민투표가 실패할 경우 시장직을 내놓겠다고 했다. 2011년 8월 24일 오 전 시장은 투표결과 투표율 33.3%를 달성하지 못해, 투표함이 폐기됨에 따라 약속대로 시장직을 사퇴하고 야인으로 돌아갔다. 국민들이 정치에 대한 혐오가 거세질수록 좌고우면하지 않고 정치적 소신과 신념, 더 나아가 ‘국익’을 위해 ‘독배’를 마다하지 않고 "소신‘을 지키기 위해 한 몸을 과감히 내던진 이들을 그리워하게 되는 것 같다. 역사는 수레바퀴처럼 돌고 도는 만큼 이들에 대한 평가는 관점에 따라 다소 차이가 날 수도 있겠지만 잠시 죽었다 영원히 사는 길을 택한 이들이 언젠가 더 당당한 모습으로 역사의 전면에 나서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