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은 수시력(授時曆) 시행 이후 그 계산법을 알지 못하여 빼놓았던 일월교식(日月交食)과 오성(五星)을 추보(推步)하여 보완케 했고, 세종 15년(1433) 정인지(鄭麟趾), 정초(鄭招), 정흠지(鄭欽之), 김담(金淡), 이순지(李純之) 등의 학자들에게 칠정산내외편(七政算內外篇)을 편찬하도록 했다.칠정산내편(七政算內篇)은 수시력과 명의 대통력통궤(大統曆通軌)를 바탕으로 하여 오차를 교정하여 역일(曆日), 태양(太陽), 태음(太陰), 중성(中星), 교식(交食), 오성(五星), 사여성(四餘星)의 칠정(七政)과 천행제율(天行諸率), 일행제율(日行諸率), 월행제율(月行諸率), 일월식(日月食)의 한도 등에 대하여 서술했는데, 세종 24년(1442)에 완성되어 세종 26년(1444)에 간행되었다. 칠정산외편(七政算外篇)은 칠정산내편(七政算內篇)이 편찬된 뒤 회회역경통경(回回曆經通經)과 가령역서(假令曆書)를 개정 · 증보하였으며 그 내용은 태양(太陽), 태음(太陰), 교식(交食), 오성(五星), 태음오성릉범(太陰五星凌犯) 등으로 나뉘어져 내편(內篇)의 칠정(七政)과 다른 것으로, 내편(內篇)은 2권 2책이었으나 외편(外篇)은 3권 5책으로 구성되어 있다.이 달력은 한성의 위도에 따라서 작성되었고 1년의 길이를 365.2425일로 정하고 한 달의 길이를 29.530593일로 정해 수시력(授時曆)과 같은 상수(常數)를 취하고 있으며 1년 또는 1개월의 평균치와 세차(歲次)의 값도 현재의 것과 같으며 그 밖의 대부분의 수치들이 유효숫자 여섯 자리까지 현재의 값과 일치하고 있다. 칠정산내외편의 완성으로 조선의 역법(曆法)은 완전히 정비되었고, 그 후 역법은 한성(漢城)을 표준으로 실측 추보(推步)한 내편에 의하여 추산되었다. 그러한 역법의 계산은 이순지와 김담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이순지와 김담은 그러한 계산에서 대통력일통궤(大統曆日通軌), 교식통궤(交食通軌), 오성통궤(五星通軌), 월성오릉범(月星五凌犯), 중수대명력(重修大明曆), 경오원력(庚午元曆) 등을 저술하였다. 명의 역법이 대통력통궤(大統曆通軌)에 의한 것처럼 조선의 역법도 칠정산내편(七政算內篇)이 바탕이 됨으로써 완전히 확립되었다. 그러나 서운관(書雲觀)은 역법(曆法)에 오차가 발견될 때마다 대통력(大統曆)과 칠정산내편(七政算內篇)을 비교, 추산하여 교정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