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농단(先農壇)은 농사짓는 법을 인간에게 가르쳤다는 고대 중국의 제왕인 신농씨(神農氏)와 후직씨(后稷氏)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태조 대에 이미 적전령(籍田令)·적전승(籍田丞)을 두어 왕의 농경 시범과 치제의 의례를 관장케 하였다. 서적전(西籍田)은 개성부 동쪽 20리에 있었으며 동적전(東籍田)은 한성부 동교 10리에 있었으며 이를 전농(典農)이라 했으며, 태종 6년(1406) 적전단(籍田壇)을 보수하고 수호하는 인정(人丁)을 두었다. 흥인지문 밖 선농단은 성종 7년(1476)에 쌓았으며, 임금이 친히 경작하여 그 수확으로 신농씨(神農氏)와 후직씨(后稷氏)를 제사지내던 토지인 적전(籍田)을 마련하고, 경칩(驚蟄) 뒤의 첫 번째 해일(亥日)에 제사를 지낸 뒤 왕이 친히 쟁기를 잡고 밭을 갈아 보임으로써 농사의 중함을 만백성에게 알리는 의식을 행하였다고 한경지략(漢京識略)에 기록되어 있다. 선잠단(先蠶壇)은 중국 상고 황제(皇帝)의 황후 서릉씨(西陵氏)를 누에신(蠶神)으로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곳이며 조선 성종 2년(1471)에 처음 쌓고 뽕나무를 심어 궁중의 잠실(蠶室)에서 키우는 누에를 먹이게 하였다.왕비는 궁중 안에 단을 꾸며 내명부ㆍ외명부들을 거느리고 친잠례(親蠶禮)를 거행하였는데 매년 음력 3월) 길한 뱀 날(巳日)에 혜화문 밖의 선잠단에 풍악을 울리고 제사를 지냈으며 조정에서 선잠제가 국가의식이므로 대신을 보내어 제사를 주관하였다고 동국여지비고(東國輿地備攷)에 기록되어 있다. 세종은 양잠(養蠶)을 크게 장려하여 각 도마다 적당한 곳을 골라 뽕나무를 심도록 강력히 종용하였고 잠실(蠶室)을 지어 누에를 키우도록 하였다. 성종 8년(1477) 창덕궁에 채상단(採桑壇)을 신축하여 왕비의 친잠례를 거행하고, 선잠단에 관리를 보내 제향의식을 매년 3월에 행하였다. 더타임스 김민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