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신성(趙信聖)은 안창호가 평양에 세운 진명여학교가 1910년 폐교 위기에 처하자 교장직을 맡아 학생 모집에 매진하는 등 헌신적으로 활동하였다. 1919년 11월 관전현(寬甸縣)에서 조직된 대한독립청년단연합회(大韓獨立靑年聯合會)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맹산독립단(孟山獨立團)을 조직하여 총참모장으로 활동하며 영원, 덕천, 맹산군 등 서북지방에서 친일파를 처단하고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1927년 2월 민족유일당운동의 일환으로 신간회(新幹會)가 조직되고 5월에는 통합 여성운동단체인 근우회(槿友會)가 창립되었다. 근우회(槿友會) 평양지회를 설립하고 여성들의 경제의식을 높이고, 여성의 구직을 돕고자 메리야쓰 공장 설립을 추진하는 등 현실적인 여성운동을 전개하였다. 1931년 근우회 중앙본부가 해체된 이후에도 평양지역에서 민족교육운동과 여성교육운동에 힘을 쏟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