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근환(梁槿煥)은 1919년 고향에서 3ㆍ1 대한광복운동을 주도하였으며 일본 동경으로 건너가 일본대학 정치경제과에 입학했고 노동과 고학을 병행하였다. 근근히 생활을 꾸려나가면서도 한국인 유학생들의 생활을 보살폈고, 대한국의 광복을 위해 상하이로 망명할 뜻을 품기도 하였다. 3ㆍ1 대한광복운동 이후 일제가 민족분열통치를 실시하는 가운데, 친일세력 육성에 가장 앞장선 단체가 국민협회였으며 회장 민원식은 한민족이 말과 정신을 모두 버리고 충실한 일본신민이 되어 일본정치에 참여할 권리를 획득하자고 주장하였다. 1921년 2월 16일 민원식을 처단하기로 결심하여 한국인 유학생으로 신분으로 속이고 도쿄역 호텔 14호에서 숙박하고 있는 민원식을 찾아가 그대와 같은 자야말로 민족을 배반하는 자라고 질타하며 가슴에 품었던 비수를 뽑아 처단하였다. 의거 후 호텔을 빠져나와 나가사키항으로 가서 상하이로 망명하기 위해 배에 올랐으나 뒤쫓아 온 일본경찰에게 붙잡혀 도쿄로 호송되었다. 도쿄지방법원에서 당당한 기세로 일본제국주의의 실상을 폭로하며 대한국의 광복에 대한 뜻을 굽히지 않았다.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2년간 옥고를 치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