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담 스님은 1926년 전북 옥구에서 태어나 충남 서천에서 자랐다. 속명은 김몽술. 한학을 배우다 33년 벽초 스님을 은사로 동진출가했다. 근현대 한국 선(禪)불교의 중흥조로 불리는 경허 스님과 만공 스님의 법맥을 이었다. 특히 열두 살 때부터 46년 만공 스님이 열반에 들 때까지 시봉하면서 가르침을 받았다. "마지막선지식", "천진불" 등으로 불려 17세 때 오도송을 읊고 만공 스님에게 깨달음을 인가받은 스님은 천진무애한 행동과 활발한 선지(禪旨)로 불교계에서 ‘마지막선지식’,‘천진불’ 등으로 불려왔다. 58년 불교정화 당시 구례 화엄사 주지를 거쳐 70년 수덕사 주지를 맡았다. 83년 덕숭총림 설립을 주도했으며, 혜암·벽초 스님에 이어 86년 덕숭총림 제3대 방장으로 취임했다. 몸소 논밭을 일구는 등 선농일치(禪農一致)의 실천으로 평상심의 도를 내보이며 덕숭총림의 선풍을 이끌었다. 94년 조계종 원로회의 부의장을 지냈고 승가사, 개심사 보현선원 조실 등을 역임했다. 허백련, 장욱진, 이응로 화백과 교류하는 등 서화에도 일가를 이루었다. 특히 그의 서예는 우리나라 최고의 선필로 알려졌다. 원담 스님은 열반을 앞두고 문도들이 마지막 말씀을 청하자 “그 일은 언구(言句)에 있지 아니해. 내 가풍은 (주먹을 들어보이며) 이것이로다!”라고 한 뒤, “올 때 한 물건도 없이 왔고(來無一物來)/ 갈 때 한 물건도 없이 가는 것이로다(去無一物去)/ 가고 오는 것이 본래 일이 없어(去來本無事)/ 청산과 풀은 스스로 푸름이로다(靑山草自靑)”라는 임종계를 남겼다. 이명박 대통령, 이회창 총재 등 각계인사들 조문 불교계 안팎에서는 원담스님의 원적을 안타까워하는 사부대중의 애도문이 잇따라 발표됐다. 조계종 법전 종정예하는 지난 19일 스님의 열반을 애도하는 법어를 내렸다. 법전 종정예하는 “인연 따라 모습을 나투고 세상을 종횡 무진하더니, 오늘은 눈앞에서 묘진(妙眞)을 나투어 두출두몰(頭出頭沒)하고 은현자재(隱顯自在)함을 보입니다”라며 “공적(空寂)하고 응연(凝然)한 진상(眞相)을 우리에게 보인 것은 노화상(老和尙)의 활중득사(活中得死)의 소식(消息)입니다”고 법문했다. 김의정 조계종 중앙신도회장은 지난 19일 조사를 발표하고 “2000만 불자들은 수행정진을 다하여 자기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밝히는 일과 일체 중생을 건지는 길을 가르쳐 주신 큰스님의 덕숭총림의 선풍을 높이 받들겠다”고 밝혔다. 수덕사 분향소, "황하정루 추모 발길 이어져" 스님의 분향소가 마련된 수덕사 황하정루에는 추모의 발길이 이어졌다. 조계종 법전 종정예하를 비롯해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스님, 원로의원 월주스님, 화성 용주사 주지 정호스님, 이명박 대통령,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 등 사회 각계인사들의 조문행렬이 줄을 이었다. 원로회의장으로 치러지는 원담스님의 영결식은 지난 22일 오전10시30분 수덕사 대웅전에서 거행됐으며, 다비식은 영결식에 이어 경내 연화대에서 엄수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