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타임스 나환주기자] 호남4.19혁명단체 총연합회는 3.15 의거 53주년을 맞이해 3.15의거와 4.19 혁명 역사 바로세우기 일환으로 ‘곡 민주주의 장송데모’ 재현과 함께 광주 3.15 의거 알리기에 나섰다.
53년전 3.15일은 이승만 정권의 부정 선거가 극에 달해 이에 항거하는 의거가 3월 15일 오후 3시 30분 마산에서 최초로 일어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4.19혁명단체 총연합회에서는 3.15의거의 시작은 광주 금남로에서 ‘곡 민주주의 장송 데모’와 함께 최초의 유혈 사태가 났으며 이로 인해 당시 이필호 국회의원(당시 36세) 부인이 임신중에 맞아 치료중에 사망했고 이필호 의원은 현재까지 행방불명이다고 밝혔다.
호남4.19혁명단체는 이날 광주 충장로에서 3.15 역사 바로 알리기 일환으로 ‘곡 민주주의 장송 데모’를 재현했다.
또 이에 앞서 YMCA 무진관에서 기념식을 가졌다.
기념사에 나선 김영용 회장은 “광주에서 일어난 민주주의 장송 데모가 마산보다 3시간 앞섰는데도 역사는 마산에서 처음 시작된 것으로 기록하고 있어 오류를 바로잡고자 행사를 열었다"며 "사실상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된 것은 광주 3·15의거"라고 말했다.
그는 또 “마산의 의거 피해자들은 국가적 도움을 받고 있으나 광주 3.15 의거 희생자들은 아직까지 그 생사조차 확인 할 수 없다. 역사적 입증 자료가 있음에도 이를 외면한다면 희생자의 덕이 하늘에서 쉬지 못할 것 이다”고 말했다.
3.15 당시 데모에 참여했던 조경호씨는 “상여를 매고 민주주의가 죽었다며 곡을하고 울고가는 행렬은 시민들의 심금을 울리는 평화 항쟁이었다” 며 “돌을 던진것도 아닌 평화 시위 군중을 무자비 하게 폭력으로 저지한 것이 당시 정부의 행태였고 데모를 주도했던 이필호 의원의 가정은 멸문을 당했다”고 전했다.
4.19 혁명단체 총연합회는 이어 오후 4시 제2회 3.15기념 학술세미나도 함께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