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타임즈 마태식 기자 ] 지난 22일 오전 11시 24분, 경북 의성군 안평면 괴산리. 조용한 농촌 마을에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긴 겨울 끝자락의 메마른 산세를 따라 불길은 안동, 청송, 영양, 영덕까지 확산되어 삽시간에 경북 북부 5개 시군을 집어삼켰고, 지역은 재난에 휩싸였다.
산불 발생부터 이날 오후 5시까지, 무려 149시간. 그 긴 시간 동안 현장을 지킨 이들이 있다. 불을 끄기 위해, 그리고 사람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진 공무원들이다. 그들은 이름 없이, 얼굴 없이 이 땅의 울부짖음을 품고 움직였다.
“우리는 한 명이라도 더 살려야 했습니다” 산불의 최전선에 있었던 이들은 소방청과 산림청의 대응인력들이었다. 경북도와 산림청은 드론과 위성을 통한 통합지휘기술로 불길의 경로를 정밀 분석하고, 열화상 장비를 활용해 실시간 대응 체계를 수립했다. 그러나 지도 위의 선이 현실의 불꽃을 막아주진 못했다. 진짜 싸움은 현장에서, 땅 위에서 이뤄졌다.
“뜨겁다는 말로는 부족했습니다. 땀이 아니라 물이 몸에서 빠져나가는 느낌이었어요.” 한 산불진화대원은 의성 산속에서 72시간째 투입 중이었다. 휴식 시간은 말 그대로 ‘눈붙이는 시간’이었고, 식사는 빵 한 조각과 물 한 컵이 전부였다.
소방관들은 기진맥진한 몸을 이끌고도 “아직 한 명 더 있다”는 소리에 다시 불 속으로 들어갔다. 2400여 세대, 8000여 명의 주민 대피를 위한 현장 지원도 그들의 몫이었다. 26일 오후 12시 51분, 의성군 신평면 하공리. 산불 진화 임무를 수행하던 중형 헬기 1대가 추락했다. 조종사 박현우 씨(73)는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40년간 하늘을 날아온 그는, 이번에도 누구보다 먼저 뜨고 누구보다 늦게 내릴 작정이었다.
“연락 두절 후 현장을 확인했을 때 기체는 산허리에 박혀 있었고, 박 조종사님은 그 안에서 마지막까지 조종간을 놓지 않았습니다.” 산림당국 관계자는 말을 잇지 못했다. 고인은 마지막 순간까지 마을을 지키기 위해 불길 속으로 비행을 강행했다.
문화재도, 사람도 모두 속수무책이었다. 천년고찰 의성 고운사의 가운루와 연수전이 전소되었고, 청송 병보재사, 기곡재사, 안동의 약계정이 재로 변했다. 역사적 기억을 담은 문화재들이 하나둘 불에 휩쓸릴 때, 현장에 있던 경북도 관계자는 “이건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시간 그 자체였다”며 안타까움으로 울먹였다.
사망자는 총 28명, 이 중 24명이 경북에서 발생했다. 다수가 고령의 주민들이었고, 대피 도중 탈진하거나 뒤늦게 화마에 휩싸였다. 37명이 부상하고, 그보다 훨씬 많은 이들이 삶의 터전을 잃었다.
28일 오후 5시, 주불(主火)은 마침내 완전히 진화됐다. 산불은 서울시 면적의 80%에 해당하는 45,170헥타르의 산림을 앗아갔다. 전국 소방력과 산림청, 군 병력, 지자체 인력 수천 명이 진화작업에 동원됐고, 비로소 사투는 끝이 났다.
경북도 관계자는 “주불은 잡았지만, 피해 회복은 이제부터”라며 고개를 숙였다.
그들은 누구보다 먼저 현장에 도착했고, 누구보다 늦게 철수했다. 목숨을 잃은 동료를 애도할 시간도 없이, 불길의 방향을 읽고, 삽으로 잿더미를 걷어냈다. 이들은 누구보다 많은 것을 봤지만,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는 피했다.
“우리 일은 그냥, 불을 끄는 게 아닙니다. 다시 살 수 있게 해주는 일이죠.” 산불 진화를 마친 소방당국 관계자의 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또 다른 재난을 대비해 그들은 조용히 장비를 점검하고 있다. 우리는 이들의 헌신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오늘, 그 기록은 여기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