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종은 1457년(세조 3) 9월 왕세자 덕종(德宗)이 죽자 왕세자에 책봉되었다. 1466년부터 승명대리(承命代理)로 정무를 보아오다 1468년 9월 세조가 죽기 직전 왕위를 이어받았다. 그러나 세조말부터 신숙주(申叔舟)·한명회·정인지(鄭麟趾)·구치관(具致寬) 등의 훈신(勳臣)들이 승정원에 상시 근무하면서 정무에 참여할 수 있는 특권이 부여되어 있었고, 예종 즉위 후 전직 대신들이 원상(院相)으로 현직 의정부 대신들보다 더 높은 위치에서 정무를 처결하는 등 실질적 권력을 장악했다. 원상 세력과 이시애(李施愛) 난 진압에 공을 세운 뒤 정치적 지위가 상승한 강순(康純)·남이(南怡)·구성군(龜城君) 등 적개공신(敵愾功臣) 간의 권력다툼이 노골화되었다. 그해 10월 적개공신 세력이 반역 혐의로 제거되었다.원상(院相)세력은 익대공신(翊戴功臣)에 책봉되어 80~150결(結)의 공신전을 받았으며 1469년 3월 3포(三浦)의 사무역(私貿易)을 금했으며, 6월에는 일반 농민이 둔전(屯田)을 경작하는 것을 허가했다. 그해 9월에는 문민질고별감(問民疾苦別監)을 경상도·충청도·전라도에 각각 보내 민란을 진정시켰다.1469년 6월 세계지도인 천하도를 작성했고, 7월 조선 초부터의 내우외환을 기록한 무정보감(武定寶鑑)을 완성했다. 9월 최항(崔恒)·김국광(金國光)이 경국대전을 완성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