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도(李丙燾)는 1922년부터 한국사상사와 지리도참 등 사상사 연구에 전념하였다. 1925년 8월부터 1927년까지 총독부 산하의 조선사편수회에서 수사관보로 일하였으며 이후 조선사편수회에서 퇴사하고, 임시직인 촉탁으로 일하였다. 1933년 4월부터 1943년까지 중앙불교전문학교 강사로서 조선유학사 강의를 담당하였다.1934년 5월 7일에는 한국 문화 연구를 목적으로 하여 진단학회를 창립했다. 11월 28일에 진단학보 창간호를 간행하면서 편집 겸 발행인으로 활동하였다. 진단학회의 주소를 서울시 종로구 계동 이병도의 집 주소지로 하였다. 진단학보 창간호에 하멜표류기를 번역하여 연재하기 시작하였다. 1935년 4월 17일 진단학보 2호를 발간했다. 1941년 4월부터 3년간 이화여자전문학교 사학강좌 담당 강사로 출강하였다. 일제의 탄압으로 1943년 9월 진단학보 14호의 발행을 끝으로 진단학회가 해산되었다. 1945년 8·15 대한 광복을 맞아 진단학회의 자진해산 후에도 조선사편수회를 지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