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윤적(魚允迪)은 유길준(兪吉濬)의 서유견문(西遊見聞)의 교열을 맡아 간행했고, 시무학교(時務學校) 교사를 지냈다.일본의 한국에 대한 간섭이 강해지면서 일본어 담당의 번역관·상서관(象書官)으로 관직에 임용되었으며, 보빙대사(報聘大使)의 수행원으로 일본에 가 통역을 맡아 일본인들과 교류를 넓히고 훈5등욱일장(勳五等旭日章)을 받았다. 1904년 총영사관이 되었으며, 1906년 용천감리·용천부윤을 역임했다. 1907년 8월 학부 편집국장이 되었으며 국문연구소의 위원으로서 한글의 문자체계와 맞춤법을 성리학의 태극·음양의 원리로 설명하고 문자학의 의미를 부여하였다. 1908년에는 한성사범학교와 한성고등여학교 교장을 역임했다. 1910년 8월 경술늑약 불법 늑결 뒤 교육계 대표로 총독부 중추원 부찬의로 임명되었다. 1916년 일제의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고 한국의 역사를 왜곡시키는 작업인 조선반도사의 편찬에 위원으로 참여했고, 조선어사전 편찬 때 심사위원으로 일했다. 1919년 11월 총독 사이토의 문화통치정책에 따라 만들어진 친일유림단체 대동사문회(大東斯文會)의 대표로 취임하여 정만조(鄭萬朝) 등과 함께 유림의 친일분위기 확산에 주력했다. 이후 관계·학계의 각종 친일사업에 동원되면서 조선사편찬위원,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강사로 활동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