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독부는 한국사 편찬 작업을 강력히 추진하기 위해 위원회를 중심으로 1925년 조선사편수회관제를 공포하여 새 독립관청인 조선사편수회를 설치했다. 회장은 정무총감이 겸임했으며, 고문에 이완용·박영효·권중현·쿠로이타·핫도리·나이토, 위원에 이마니시·이능화·어윤적·오다 등, 간사에 이나바 등 3명, 수사관에 이나바·홍희(洪熹)·후지타 등 3명이 임명되었다. 이후 이병도(李丙燾)·신석호(申奭鎬) 등이 수사관으로 참여했으며, 최남선(崔南善)도 1928년 12월 촉탁위원으로 참여했다. 조선사편수회(朝鮮史編修會)는 한국사를 편찬하면서 고조선사,발해사,대한제국사를 고의로 누락하였으며 서술의 중심은 한민족의 주체적 역사발전을 서술하지 않고 한국이 중국의 속국이며 사대주의로 일관했다거나 중국과 일본보다 역사와 문화가 뒤떨어져 있다는 일본의 한국 침략과 강점의 합법성,정당성을 선전하기 위한 사료의 취사선택·왜곡을 자행했다.한국사편찬작업에 참여한 한국인 학자들은 일제가 한국 침략과 지배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한국사 폄하,왜곡에 기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