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朴相駿)은 평안남도 성천의 사립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면서 태극학회의 성천지회 회장을 맡아 계몽운동을 벌였다. 이후 강동군과 순천군의 군수가 되었고 경술늑약이 불법 늑결된 이후 친일파로 활동하게 되었다.1919년 3·1 대한광복운동 이후 승진을 거듭하여, 평안남도 참여관(1921), 강원도 지사(1926), 함경북도 지사(1927), 황해도 지사(1928)를 거쳐서 1939년에는 총독부 중추원 참의가 되었다. 1937년 시국강연반에서 전국을 나누어 담당하여 시국 강연을 벌일 때 경상남도에서 친일 연설을 했으며,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1939), 국민총력조선연맹(1940), 흥아보국단 준비위원회(1941), 임전대책협의회(1941), 조선임전보국단(1942)에 참가했다.1939년 경학원 대제학에 임명되었다. 1941년 유림 주도로 전쟁 승리를 기원하는 제사를 주관했고, 1943년 친일 유림 단체인 유도인연합회 회장에 올랐다. |